136 계자 닫는 날, 2010. 1.15.쇠날. 맑음

조회 수 1032 추천 수 0 2010.01.22 03:19:00

136 계자 닫는 날, 2010. 1.15.쇠날. 맑음


너무 귀해서 손에서 놓지 못하고
애는 기차 태워 보내면서 꼭 쥐고 도로 내리셨다던 밥도둑 게장,
그걸 또 경이모친이 현수모친으로부터 넘겨받아
다시 영동역까지 배달 왔습니다.
또 들고 서울 가실까 봐
경이 맞이보다 먼저 건네주셨던 간장게장.
네, 잘 받았습니다, 무사히, 완벽하게.
샘들은 위한 반찬은 더욱 환영이랍지요, 하하.
그렇게 아이들을 역에서 모두 보냈습니다.
다들 왔던 아이들이라
돌아가는 역에 부모님 겨우 두 분 뵀지요.
그래서 여느 계자와 달리 부모님들께 다녀온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계자에서 숨 쉬었던 우리들(끼리) 마감하는 자리가 되었더랍니다,
‘신아외기소리’ 영동역이 떠나가라 부르며.

역에서 하는 '물꼬장터'는
서로에게 기념이 될 만 것을 나누는 본래 의미 대신
아이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을 어른들이 찾는 자리이기도 하지요,
저들이 잊은 거라도 부모님들 눈에는 보이니.
“안 되겠는데요.”
그런데 이미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기 전에도 한바탕 보여주었던 것인데,
어른들이 없으니 여전히 찾아가기 어려울 것이라고들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이면 저들이 더 잘 간수하였을 테지,
어차피 또 오기도 할 게고,
있으면 오는 아이들이 또 잘 쓰기도 하지,
이래저래 보따리를 풀려다 말았지요.
그런데 아이들 보내고 나서야
승미가 학교를 나가기 전 제 장갑을 찾으러 왔을 때
“지금 돌리는 빨래는 역으로 가져나갈 거니까 그때 찾을 수 있어.”
그리 말하고 돌려보냈단 걸 알았습니다.
헤어지는 북새통에 그만 저도 잊고 갔겠지요.
중국에서부터 날아온 승미,
제 물건 잘 챙기는 아이 맞습니다요, 아버님.

느지막한 아침,
다른 날의 해건지기 대신 이불을 탈탈 털며 일상수행을 하고
모두 모여 갈무리법 안내가 있었더랬습니다,
가방을 어떻게 여미는지,
그리고 먼지를 어떻게 털어내야 할 것인지,
우리가 잘 지냈으므로 하는 정리이기도 하지만
다시 이 공간을 쓸 이들을 위한 마음내기까지.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돌아보기’를 하고
마침잔치에서 받은 ‘마친보람(수료장)’으로 점심을 먹은 뒤
영동역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지요.
부엌엄마아빠가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이들에게 오래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예현이를 데리고 피부과에 들렀습니다.
그 아이, 누군가 홀로 밥을 먹으면
자기 먹던 쟁반을 들고 그 상으로 가만히 건너가는 아이,
굵은 소금물로 씻어도주어 조금은 가라앉았나 싶은데
지난 불날부터 얼굴에 돋은 것들이 아직 붉었지요.
접촉성피부염증 정도로 진단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원인이었을까요?
돌아오며 퍼뜩 든 생각 있었지요.
눈에 노출되는 일이 드문 그에게
눈으로 온통 얼굴을 부비고 한 것이 원인이지 않았을지요.
그런데, 쳐다보며 속상해라하면
되려 저가 위로를 해주는 우리 예현이!

마지막 아이가 기차에 오르는 걸 보고 올 때까지
예현이랑 갈무리 장소에서 샘들을 기다렸습니다.
생각도 온통 아직 계자이지요.
몇 가지 것들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속아주는 지혜, 기다리는 지혜보다 더한 어른의 덕목이 어딨을까...
아이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문제적 상황을 미리 예견하는 것도
교사의 역량이겠다...
어떤 아이를 활동 중간에 받아들일 때
이미 있는 아이들의 동의를 충분히 끌어낸 뒤 할 수도 있지 않을까나...
아이가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 상황에 대해 그 아이 편에서 공감하는 게 또한 교사가 아닐까,
그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또한 있지 않을까...
아이들이 정말 해선 ‘안 되는’ 행동을 드러냈을 때
설득이나 이해의 과정보다 더 지독하게 따끔하게 한 소리 하는 게 더 현명한 건 아닐까,
가령 장애아를 받아들이지 못 하겠다 눈앞에서 상처줄 때...
나눔, 순함, 이미 그런 품성을 타고난 아이도 있지만
더러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다.
그렇지 못한 그 아이를
더 연민의 마음으로 보고 치유해내는 게 또한 교사의 몫이 아닐까,
그런 얘기가 있지, 불효자도 효자도 부모가 만든다는.
이불 속을 먼저 들어가 있는 아들,
애비 먼저 들어갔다고 혼이 나는가 하면
반면 애비를 위해 데워준다고 칭찬을 받기도 하지 않던가.
우리들의 해석은 보다 긍정적이어야 할 것!
그래서 아이들이 효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 입이란 걸 잊지 말 것.’

샘들이 왔지요.
두루 지난 시간을 짚어봅니다.
시설아동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이 큽니다.
이십 년도 더 전에 그곳 아이들을 안아주며
같은 몸무게라도 더 가벼웠던 경험은 지금까지도 충격입니다.
어쩜 영혼의 무게 사랑의 무게만큼 비어있는 건 아닐는지요.
한편 꼭 난로에 가장 자주 가까이 있는 아이들도 그들이었습니다.
가장 도회적인 것들, 가령 드라이어기 고대기를 들고 오는 이들도
역시 그들입니다.
어쩜 비어있는 가슴 자리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닐지요.
그렇다면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으려나요...
작은, 정말 아주 작았지만, 불성실에 대한 조언도 있었습니다.
어째도 시간은 가지만 무성의하지 말자는,
예를 들면 열린교실에서 ‘다좋다’가 그저 하릴없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시간을 맡은 샘은 더 많은 고민과 준비가 있어야 할 것이라는.
갈무리 글을 끝내고 몇몇과 면담이 있었음도 전했습니다.
문제가 없으면 좋지요, 암만.
하지만 일어나데요.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아니겠는지요.
드물기는 했으나 아이들과의 갈등, 혹은 아이들끼리의 갈등들 역시
‘어떻게’에 있는 것이겠습니다.

처음 온 일꾼들과 왔던 일꾼들 사이엔 큰 차이가 있습디다,
결코 나이 문제가 아니라.
서른을 넘고 마흔을 넘겨도 모르는 건 모르는 게지요.
물론 처음이어서 잘 몰라서 조심하느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몇 날이 지나서도 변치 않기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물꼬에 익은 사람들은 밥상을 준비하는 부엌을 향해 이리 묻습니다.
“도와드릴까요?”
“뭐 하면 돼요?”
하기야 수년이 되어도 안 되는 사람이 있지요,
설거지도 꼭 하라고 시켜야만 하는.
아, 그래서 물꼬가 고맙습니다.
잠깐 다녀가지만 우리가 지닌 일상의 면들을 들추고 생각하게 하고
그리고 익히게 하니 말입니다요.

행사를 해보면 뭐니뭐니해도 밥바라지가 젤로 중합니다.
이번 계자는 최고의 바라지들이었지요.
후덕하고 따스했으면 그것으로도 넘치는데
게다 요리까지 일품이었답니다.
뭐라도 거둬 먹이겠다 어찌나 바지런도 하셨던지요.
다른 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말 온 힘을 쏟으셨답니다.
부엌엄마 이정애, 부엌아빠 강충근, 정말 수행자들이었지요.
기꺼운 마음과 움직임, 그리고 밝음과 겸손은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공부였더랍니다.
아이들게 또한 얼마나 안정적이었을지요.
그나저나 가스를 많이 써서 살림이 아주 축났습니다요, 하하.

물꼬의 현재 체제에서 계자가 굴러갈 수 있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엄청난 기적이지요.
그 기적을 샘들이 만들어주고 있지요.
아무리 말해도 닳지 않는 고마움이랍니다.
고맙습니다.
모다 애쓰셨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아이들에게야 이루 말할 수 없을 테지요.

무사귀환 소식들이 속속 들어오고
가마솥방에선 남은 이들, 다시 들어온 이들이 한담 오래였습니다.
울산의 부선 건표 강충근님 이정애님,
희중샘, 초록샘, 선영샘, 휘령샘,
그리고 물꼬 붙박이 식구들.
겨울계자 일정이 끝났네요
(후일 작업이야 당연히 ‘후’에 하는 거지요.).
긍정적인 기운들이 만든 기분 좋은 시간들이었답니다.
‘기분 좋음’ 얼마나 중요하던가요.

참, 그래요,
선생노릇 만만찮지요,
그런데 에미노릇은 더 어렵습디다.
아이 키워보면 칭찬까지 원치 않습니다,
그저 우리 아이가 나쁜 일로 이름이나 올리지 않았으면 하게 되더라구요.
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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