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8.달날. 맑음

조회 수 854 추천 수 0 2010.02.02 23:37:00

2010. 1.18.달날. 맑음


날이 퍽 푹합니다.
고맙습니다.

계자의 두 번째 정리 공간은 부엌입니다.
그렇다고 교무실을 완전히 정리하고 다음으로 옮겨온 것이 아니라
웬만큼 발에 걸리는 것들만 치운 정도이지요.
부엌을 살피며 또 다시 놀라고 말았습니다.
남겨진 이를 위한 배려를 곳곳에서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공간에 대해 ‘책임'져 주신 게지요.
어찌나 정리를 잘 해놓고 가셨는지,
남은 음식이 없도록도 최대한 마음 써주셨습니다.
이정애님, 강충근님을 다시 돌아보게 됩디다.
일이 끝났다고 서둘러 떠나기 바쁜 발들이 흔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런 분들께 고마움이 달아나는 건 아닙니다.
계자 기간 동안 충분히 도움이었고 그것으로도 크다마다요.)
136 계자는 정말 최고의 부엌바라지들이셨지요!

오후에는 숨꼬방과 도예실을 살핍니다.
옷방의 옷 못잖게
도예실(사실 창고에 가까운) 구석은 여분의 신발이 많기도 하지요.
계자 때 잘 챙겨 신었던 신발들도
다시 그곳으로 모았습니다.

잠시 숨을 돌리며 난롯가에 앉았지요.
용케 이 겨울의 계자도 끝을 맺었습니다.
어찌어찌 계자를 준비했고
신기하게도 어디서 어디서 모인 품앗이일꾼들이 해낸 일이었지요.
그 중심축에 희중샘과 아람형님이 있었더랬습니다.
계자 전에 한 새끼일꾼계자는 큰 준비기간이 되어
어느 때보다 든든했던 새끼일꾼들이 그 뒤를 받쳤습니다.
한편 기꺼이 마음을 내고 몸을 낸 훌륭한 부엌바라지들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 너머 인사 한 번 제대로 못 건넨 한 벗이 있었습니다.
건강을 살펴 때마다 보약이며 문화적 기운을 돋우는 그의 덕으로
몸이 실해져서도 잘 보낸 고마운 날들이었습니다.
두 해전 실제 물꼬의 일상을 끌어가던 실무 두 친구가 빠지고
이빠진 늙은 호랑이 한 마리처럼 앉아 첨엔 얼마나 당혹스럽던지,
여기까지 온 것만도 기적입니다.
함께 한 사람들이 한 일이었지요,
예전에 물꼬가 그러했듯.
지난 세 해, 첨엔 길을 잃었다 생각했고,
담엔 비로소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음을 알았습니다.
이제 안으로 침잠하겠다던 4년 가운데
한 해를 남겨놓고 있습니다.
어떤 날이 올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최선의 길을 걸어갈 테지요.

‘인연이 있는 사람’이란 글 한 편이 닿았습니다.
부처님 시대에 부처를 모함하고 배신한 제자가 있었다지요.
이 모든 것을 지켜본 또 다른 제자가 부처님한테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의 이치를 모르는 것이 없이 전지전능하신데
왜 저런 데바닷타가 있는 것입니까? 진짜 당신은 부처가 맞습니까?”
“인연이 없는 중생은 부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다 똑같이 법을 전해 주었지만,
하늘은 태양을 똑같이 비추고 똑같이 비를 내리지만
어느 때는 좋은 비가 되어서 농사를 잘 짓게도 하고,
어느 때는 홍수가 되어서 농사를 망치게도 한다.
그것은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것이 인연이다.
인연이 있는 자는 남고 인연이 없는 자는 어쩔 수가 없느니라.
그것은 선택이다.”
좋은 인연으로 이어가려면 정직, 성실, 책임감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은 스스로 깨달아 노력해야 되는 거라 했습니다.

좋은 인연들이 물꼬를 끌어갔고, 끌어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을 믿습니다.
물론 물꼬가 올곧게 걸어갈 때만 그것이 유효함을 또한 알지요.
'정의의 길로 비틀거리며 가다',
어느 책의 제목이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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