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6.흙날. 맑음
고성 장승학교.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 장작난로를 피웠습니다.
사람들이 장승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먼저 배운 임원단 가운데 한 분이
우리들의 스승이 되어 주셨네요.
오후에는 다시 이윤열샘을 만나러 건너갔습니다.
선생님이 만들어놓으신 원형명상공원에서
아이는 긴 긴 기원을 올리고
저는 춤을 한바탕 추었더랍니다.
선생님은 어제 명상을 도울 물건을 하나씩 쥐어주셨는데,
아이가 그걸 거절한 일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워서...”
당신 사시며 그런 일 처음이었다며
상처받았다 농을 하셨지요.
아이가 제 뜻을 제대로 잘 전달하는 것은 기특하나,
한편 어른이 무엇을 주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고맙게 받겠노라 받는 법도
잘 가르쳐야겠습디다.
미리 있었던 약속도 아니었는데
귀한 시간을 몇 시간이나 나누어주셨습니다,
한 번 오기 쉽잖은 걸음일 거라고.
그 사이에도 끊임없이 선생님을 뵈러,
혹은 선생님이 만드신 공원을 걷기 위해
어찌 알고들 그 은둔지로 찾아들었더라지요.
이모 편에 어머니의 쇼핑을 도와 달라 부탁을 했던
어제오늘이었습니다.
무식한 울어머니(전 늘 이리 부릅니다)는 어째 좀 화려하십니다.
나이 드니 그리 변하셨지요.
나이 들면 그런 거라고 다섯 딸의 젤 큰 딸인 어머니를
동생인 이모들이 더욱 부추긴답니다.
어머니가 최근에 가진 바램 하나 있었는데
하필 그게 옷이었습니다,
제법, 아니 퍽도 비싼.
게다 생태주의자이기를 바라는 이라면
절대 살 리가 없는 그런 옷이라지요.
그런데 그게 어머니 평생의 소원이라시더란 말입니다.
여태 어머니께 변변히 장만해드린 게 없었습니다.
혼례 적에 예단이 오간다지만
우리는 달랑 5만 9천원으로 했던 혼례잔치였지요.
그 잔치 제목이 ‘봄 산 넘어오는 햇살’이었고,
그걸 글로 써서
무슨 간소한 혼례를 권장하는 기관으로부터 상금을 받은 적도 있었네요.
오래된 일들이군요.
어머니 그예 옷을 사셨고, 돈을 보내드렸습니다.
사람 노릇 한 번 했다 싶어
먼지만 이는 통장에도 기뻤더랍니다.
여기는 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