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 7.해날. 오후 흐림

조회 수 857 추천 수 0 2010.02.17 23:29:00

2010. 2. 7.해날. 오후 흐림


대해리 들어오니
아주 커다란 상자가 먼저 우리를 맞았습니다.
울산의 논두렁 이정애님 강충근님이 보내오신 유기농제품들이었지요.
가끔 서울서 김유정님이 보내주시는 생협 한살림 상자를 보신 뒤
물꼬 살림을 살필 좋은 방법을 알았다며 가신 게
지난 겨울 계자 뒤끝이었습니다.
소금 설탕 밀가루 국수 칼국수 당면 ...
거기에 아이들이 즐기는 코코아, 씨리얼, 약과, ...
일일이 장을 보셨을 테지요.
고맙습니다.
그 마음이 더욱 고맙습니다.
어찌 이런 연을 다 맺을 수 있었던지요...

무주 다녀왔습니다.
시카고에 있던 겨울이면 위스콘신으로 올라가 스키를 탔지요.
우리처럼 부대시설 화려한 곳이 아니라
그저 덩그마니 장비를 대여해주고 잠시 앉았을 수 있는 곳이 전부인,
그래서 큰 돈 없이도 흔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스키를 곧잘 타는 아이는 자주 가고파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게 쉽잖데요.
그래도 겨울 한 번쯤은 가주자 싶습디다, 그토록 즐겁다는데.
마침 선배가 이용티켓을 보내주었네요.
고성에서 돌아오는 길 오후, 그렇게 들렀다 돌아왔지요.

아이가 얼음골에 있는 동안
책 한권 잡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원래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스파르타라는 도시국가의 교육제도에서 온 말이야. 그 나라는 젊은이들에게 무척 엄격했지. 공부도 그렇지만 형벌제도와 도덕교육도 엄격하기가 짝이 없었지. 처벌도 마찬가지였어. 그 스파르타에서 어느 날, 너 정도 되는 소년이 새끼 여우 한 마리를 훔쳤지. 우발적인 충동이었을지도 모르고, 가난해서 그랬을지도 모르고, 계획적인 범행이었을지도 몰라. 동기는 확실하지 않지만, 훔친 게 들통 나면 어떤 일을 당할지 잘 아는 소년이 옷 속에 새끼 여우를 감추고 밤길을 걸어갔지. 그러자 새끼 여우는 고통스러워서 소년의 배를 물어뜯기 시작했어. 소년은 이를 악물고 참았어. 새끼 여우는 점점 더 필사적으로 물어뜯었고, 그래도 소년은 이를 악물고 참았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소년은 참다못해 죽어 버렸어. 인내와 비밀이 동거하는 죄는, 그 사람을 파멸시켜 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참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이지.”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사쿠라바 가즈키) 가운데서

중 2 소녀가
1년 동안 두 차례의 우발적인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고통을 겪습니다.
경찰관이 소녀에게 ‘스파르타의 여우’ 이야기를 들어봤느냐 물었지요.
모르는 소녀에게 경찰관이 들려준 이야기였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가슴에 여우 한 마리 품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인내와 비밀이 동거하는 죄까지는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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