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16.불날. 맑음

조회 수 907 추천 수 0 2010.02.28 02:50:00

2010. 2.16.불날. 맑음


“쌀 좀 씻을래?”
쌀을 한두 번 앉치는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깨끗이 씻는다고 유난을 떠는 아이.
너무 여러 차례 씻긴 쌀은
쌀눈이 떨어지고 더러 부스러져 있습니다.
‘적당함’ ‘적절함’에 대해 얘기 나누었지요.
하기야 중도라면 중도, 중용이라면 중용,
알맞은 힘 조절이 얼마나 어렵던가요.

마을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다치셨습니다.
나무를 찍다가 그만 손등을 찧은 거지요.
학교로 급히 달려오고 계셨고,
마침 개 짖는 소리에 내다보던 아이가
수상쩍은 기운에 좇아나가 할머니를 모시고 옵니다.
피 철철 흐르는 손을 꽉 움켜잡고
그래도 좀 멎은 거라 내미셨지요.
인구가 줄면서 보건소가 없어지고
이런 상처에 가끔 학교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는 합니다.
“내일도 오셔요!”
며칠 치료를 해얄 듯합니다.
그래도 꿰매거나 할 상처 아니어
병원까지 가진 않아도 되니 다행이지요.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아이가 들어오면서 넌지시 그럽니다.
“엄마, 이분선할머니네 오시는 할아버지는 누구야? 할아버지 돌아가셨잖아.”
“응. 놀러 오신 동네분이겠지. 아는 얼굴이야?”
“아니, 그런데 갈 때마다 자주 있어.”
“친구분이시겠지.”
“누구지?”
갸웃거리며 아이가 제 앞을 떠났지요.
그러다 대문에 있는 우체통에 다가가다 그 댁을 바라보는데
마침 트럭 한 대가 서있었습니다.
읍내 사는 큰아들네 거지요.
“아하...”
생각이 났습니다, 댁의 아드님이었던 겁니다.
“하다야, 그 할아버지, 할머니의 아들이야.”
“할아버지던데?”
“할머니 나이가 많으니 아들도 할아버지이신 게지.”

종일 불이랑 씨름 했습니다.
아주 소사아저씨 자리 비운 티를 냅니다.
분명 문제가 생긴 겝니다.
불량 번개탄이라 하더라도
열 개를 넘어 쓰도록 이리 안 붙을 리가 없습니다.
한두 번 안 되면 접고 다른 난로로 시도했을 법도 한데,
어째 그리 미련하게 굳이 가마솥방 난로만을 고집했는지.
가끔 어처구니없는, 혹은 아무 생각 없는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고집을 피울 것과 빨리 접는 점을 알아얄 테지요.
밤늦게야 교무실 난로로 시도했더랍니다.
내일은 붙을 테지요...

몇 백 만원 한다는 등록금 대신 한 학기 만 오천 원을 내는 학생회비로만
한 학기 내내 대학 강의를 듣는 기회를 얻고 있습니다.
그것마저도 아들이, 벗이, 남편이 학기마다 보태주기를 7학기째,
날 참 잘도 갑니다.
물꼬가 침잠하는 시간 동안 밖으로 나가 다른 공부도 해보겠다 했고
그 네 해 가운데 어느새 한 해를 남겨놓고 된 게지요.
순간순간은 고달파도 세월은 쉽게도 갑니다.
“머리와 팔과 다리를 껍데기 속에 오므려 넣고
누가 막대기로 찔러도 아는 체하지 않는다.
찔러본 사람이 지루해져 그냥 지나갈 때까지 거북은 기다렸다가,
가던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지난 세 해 그렇게 걸었더라지요.
2010학년도가 끝나면 그 공부를 마무리 짓습니다.
네 해 동안 미루었던 못 다한 일들을 하며 2011학년도를 보낼 테고,
2012학년도는 기지개를 좀 켜지 않을지요...
오늘 아이가 이번 학기 등록을 해주었네요.

설을 쇠러 혹은 다니러왔던 이들이 떠나고
아이랑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한껏 여유로운 하루였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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