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14.해날. 흐림

조회 수 1016 추천 수 0 2010.03.26 00:23:00

2010. 3.14.해날. 흐림


그믐„C니다.
꼭 이 때면 메주를 담가 장을 담지요.
도와주신다고 오신 어머니,
사실 어느새 당신이 다 해놓으십니다.
소금물을 풉니다.
희안도 하지요,
해 뜨기 전 소금을 풀면 잘 풀린다는데
오늘 조금 늦었더니 정말 소금이 덜 풀립디다.
조금 남은 덩이는 망에 담아 항아리에 그대로 넣었지요.
날마다 뚜껑을 열고 닫으며 볕을 들일 겁니다.
그러다 건져진 메주는 된장이 되고
남은 것은 간장이 될 테지요.
해보면 별 일도 아닌 것이
모르면 그리 엄두가 안 나는 게지요.

가마솥방 부엌 천장에 빗물 떨어지고 있었더랬습니다.
지붕의 못이 헐거워지며 거기로 물 스민 것 같다 짐작했지요.
마침 와 있던 종대샘,
새고 있던 못 자국 둘레에 실리콘성분(?)을 넣었습니다.
뒤란 보일러를 둘러쳤던, 무너진 벽돌도 다시 쌓고
자갈 채웠습니다.
보일러집으로 들어갔다고
그 안으로 옮기며 보일러를 감싸고 있던 것들 없애고 났더니
지난 겨울 한 시간 주기로 나무를 넣었어야했지요.
안되겠다고 계자 가운데 보일러를 둘러쌌는데
그만 무너져 내렸던 겁니다.
오늘 남정네 셋이 단단히 다시 쌓았지요.
종대샘은 전주 본가로 돌아가기 전
교무실 컴퓨터도 정리해주고 갔네요.
아이랑 외할머니도 다시 남도로 떠났습니다,
이번엔 기차를 타고.

사과쨈을 만들었습니다.
얻어온 유기농 허드렛 사과가 있었더랬지요.
씻고 도려내고, 껍질을 벗기고 썰고,
그 껍질 다시 다져 넣었습니다.
레몬즙과 계피도 뿌렸지요.
솥단지가 크기도 했는데 양이 많기도 하여
세 차례나 나눠야 했습니다.
아이들 먹일 거라고 좀 달게 했다가
너무 달지 싶어 거의 설탕을 넣지 않다가
그래도 아쉽다고 또 넣고
그걸 죄 섞어서 맛을 균일하게 했더랍니다.
이곳저곳 나누고도
올 한 해 내내 먹겠습니다.

수행중인 이들 가운데 있는 희중샘이
방문자일지에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물꼬가 아닌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하는 것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노동을 하는 것이고
물꼬란 공간에서는 노동이 아닌, 수련 수행으로 느끼게’ 되더랍니다.
‘처음 왔을 때 일이 너무 많아
힘도 들고 지치고 왜 이리 노동을 많이 시키나’ 싶더니
‘몇 해 드나들며 익숙해지기도 하고
물꼬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도 이제 해결할 수 있게 되고
뭔가 배워가는 느낌’이 크더라지요.
‘하다 할머니께서 그러셨어요. 사과껍질 썰며 허리 아프다고 하니 참으라고 하셨어요. 인생 사는 법을 배우러 물꼬에 오지 않았냐고.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물꼬에 인생을 배우러 온 것 같습니다.’

오늘 새벽 기도를 마친 ‘무식한 울어머니’ 문득 그러시데요.
“...니는 열두 살 때 보리쌀 씻어 앉혀 불 때서 밥했는데,
그런 어려운 시절이 있어서 네가 이 큰 살림을 하고 산다.”
어머니가 교육도시로 유학 간 두 아들 바라지를 할 때
제가 외할머니랑 살았던 시절 이야기이지요.
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이 삶에 대한 두려움들을 넘어가게 했던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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