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15.달날. 촉촉한 비

조회 수 905 추천 수 0 2010.03.30 01:20:00

2010. 3.15.달날. 촉촉한 비


이른 아침, 수행하다.
오전, 밭 둘레 도랑 치다.
오후, 옷방 겨울옷 정리하다.
밤, 세아(이제는 세아샘이라 불러야 되네요)가 한동안 수행하러 들어오다.

제자 하나가 고민을 보내왔습니다.
생의 어느 순간이 수월하더냐만
고교시절을 지나가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쟁쟁한 집안사람들이 살아간 길을 좇지 못해 애가 타고,
대학을 꼭 세상 흐름대로 가야하는가도 묻습니다.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충만할 수 있길 정녕 기도할 밖에요.

학생들과 같이 작업하고 발표해야할 일이 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이라고 여러 가지로 배려를 받지요.
그런 배려가 누구라고 싫을까요.
우리는 흔히 형평성에 대해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형평성은 때로 형평성이 아닙니다.
기계적인 형평성인 게지요.
과정을 중요시 한다면, 모두의 처지를 이해한다면,
그에 맞는 것들을 찾아주는 것도 교사의 지혜일 것입니다.
공정하되 하나 하나가 자기 상황에 대해 배려 받고 있다는 느낌,
아이들에게도 주고 싶은 거랍니다.

한 초등학교의 특수학급에 어려운 부탁 하나 하게 되었습니다.
친분이 있는 담임교사에게 메일을 보냈지요,
교장샘은 이미 대답을 하였으나
정작 일은 담임교사가 해야 하므로.
그 교장샘께 신신당부했더랬습니다,
담임교사에겐 직접 부탁을 하겠다고.
윗사람의 명령으로 일을 수행해야 한다면
얼마나 싫을 것인지요.
그런데 늦은 밤에 보낸 메일을 받자마자 새벽같이 답이 왔습니다.
그만 눈물이 다 글썽여지데요.
잠깐 우리가 함께 보낸 3개월이 있었더랬습니다.
‘...3개월이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올해도 당연히 그럴 것입니다.’
와서 많은 도움 달라고,
함께 보낸 시간동안 나눈 얘기들 하나하나에 맘이 편해졌었고,
뭔가 자신의 답답한 생활에 조그마한 탈출구가 생긴 거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그래서 참 감사했다 했다고,
외려 자신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 같다 했습니다.
제가 한 부탁으로 자신에게 부과될 업무가 얼마나 많을진대
기꺼이 그는 마음을 내고 있었습니다.
좋은 사람인 줄 익히 알았지만
그토록 흔쾌하게,
그것도 외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마음을 내주는 그이가
얼마나 큰 어른으로 보이던지요.
고마움을 잊지 않으면 좋은 관계가 된다던가요.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참, 기락샘은 일본에서 열린 며칠간의 학회에서
오늘 돌아왔네요.

달골의 밤,
바람 소리 들으러 어둔 바깥에 섰더랬습니다.
소로우가 그랬던가요,
다른 어느 곳에서 인간 세상의 왕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야생의 숲에서 학생이 되고 자연의 아이가 되고 싶다고.
바람 속에서 영원의 상속자임을 느낄 수 있었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3284 2016. 2.19.쇠날. 흐림 옥영경 2016-03-11 907
3283 2010. 5.17.달날. 후덥지근한 끝에 밤비 옥영경 2010-05-30 907
3282 2009.10.22.나무날. 맑음 옥영경 2009-11-07 907
3281 2007. 9. 19. 물날. 갬 옥영경 2007-10-05 907
3280 2019. 3.27.물날. 맑음, 바람 많은 / 책 <느리게 사는 것의 의미> 옥영경 2019-04-05 906
3279 2013. 1.29.불날. 흐리다 맑은 옥영경 2013-02-12 906
3278 2012.10.16-19.불-쇠날. 맑으나 바람 많은, 그리고 비 다녀가고 갠 옥영경 2012-11-06 906
3277 2012. 9.29.흙날. 맑음 옥영경 2012-10-21 906
3276 2012. 9.12.물날. 맑음 옥영경 2012-10-10 906
3275 2010. 3.29.달날. 맑음 옥영경 2010-04-17 906
» 2010. 3.15.달날. 촉촉한 비 옥영경 2010-03-30 905
3273 2017. 7. 7~11.쇠~불날. 볕과 비와 / 지리산 언저리 2-노래 셋 옥영경 2017-08-02 905
3272 2010. 3.12.쇠날. 봄볕, 그러나 흐려지는 하늘 옥영경 2010-03-26 905
3271 2017.11.26.해날. 맑음 /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옥영경 2018-01-11 904
3270 2016. 5.10.불날. 비 / 안식년(安息年)은 웁살라 대신 달골 ‘아침뜨樂’에서 옥영경 2016-05-26 904
3269 2010.12. 8.물날. 눈 옥영경 2010-12-27 904
3268 2010.12. 1.물날. 맑음 옥영경 2010-12-22 904
3267 2009. 6. 8.달날. 약간 흐림 옥영경 2009-06-22 904
3266 2013.12. 4.물날. 뿌연 하늘, 미세 먼지라지 옥영경 2013-12-25 903
3265 2013.11.2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3-12-03 90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