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29.달날. 맑음

조회 수 906 추천 수 0 2010.04.17 00:48:00

2010. 3.29.달날. 맑음


달 밝습니다.
저녁을 먹고 이장님 댁에 건너갑니다.
손을 못 대고 있는 포도밭을 어찌할까,
올해까지는 지어야지 하는 논농사며
영농자금 건으로 여쭐 일도 있었는데
이리저리 벼르기를 한 달, 오늘에야 가게 되었습니다.
뭐가 그리 일이 많은지 원...
포도밭을 패고 호두를 심으면 어떻겠냐 권하십니다.
패 낸다면 어떤 방식이 좋을까 여쭈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올해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게다 좀 더 자연 안에 맡겨둔 채로
우리 식구 먹을 만치만 따다 먹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국 미루게 되었지요.
내년에는 짓지 말아야지,
그렇게 두 해를 더 지은 논농사를
올해도 더는 못 하겠다 하고 있었는데
임대기간이 끝나는 올해까지 한 해를 더하기로
식구들이 결정을 내린 터입니다.
당장 논을 가는 일부터가 걱정이지요.
“있어봐, 내가 갈아줄게.”
이장님이 트렉터로 갈아 주시겠다 합니다.
와서 트랙터를 쓸 수 있겠는지 먼저 봐 주시겠다셨습니다.
어찌 어찌 올해도 농사가 되려는 모양이네요.

아침 수행이 끝나면 둘러앉아 오늘 보낼 하루를 그려보기 전
수행하며 드나든 마음을 꺼내 나눕니다.
오늘 아침 젊은 친구 하나가 그랬지요.
“어디 가서 명상 한다고 하면 음악소리 새소리 물소리
그런 거 음반을 틀어놓잖아요.”
그런데 여기선 바로 그것들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새들이 울고 바람 소리 지나고...
존재들이 아침을 여는 소리들이 수행방까지 들어와 채워줍니다.
좋습니다.
그 소리들만으로도 수양 길입니다.

이른 아침 마을로 내려가기 전
농협에서 나눠준 호두나무 묘목에 물을 주었습니다.
종이상자에 뭉쳐져 온 채로 몇 날을 보냈더랬지요.
언제 심을 수 있으려나요,
날씨도 불안정하고
사람 여럿 있어도 그 짬이 퍽 어렵네요.
오늘은 식구들이 대문 밖 도랑둑에 옥수수밭을 만들고
오줌거름도 뿌렸답니다.

수행하러 온 젊은 친구들은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돌아보며 살 날들을 계획합니다.
무엇을 할까, 그 길을 가는 좌표를 그리려지요.
‘자유학교 물꼬에서 제일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유학교 물꼬에서는 물고답게 행동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거죠. 물론 옥샘집에, 자유학교에 왔으면 여기 방식대로 행동하는 게 당연한 예의지만 그걸 강요하지 않는 게 자유이건만 저는 저에게 무리하게 압박을 줄뿐더러 남에게까지 그래야 한다고 했더라고요. 그러니까 다들 제가 불편했나 봅니다. 여기의 생활을 보며 저는 나중에 제 아이를 숨막혀 즉게 할 거라며 슬퍼했는데 이제 알았습니다. 아 이건 강요하는 거구나 하지 말아야지 하면 됩니다. 이제 저는 자유학교 물꼬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게 뭔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9년이 걸렸네요!
오늘 빗물통에 갇혔던 새를 구해주었습니다. 그 새에게 저는 생명의 은인인 거겠죠? 제가 박씨를 물어다주라고 했습니다. 제비가 아니지만 혹시 몰르죠. 물꼬에 행운을 가져다줄지 모릅니다. 작고 예쁜 새가 가져다 줄 행운의 박씨를 기대하세요.’(선아샘의 방문자일지 가운데서)

달빛 업고 달맞이길을 올라 달골집에 듭니다.
아이가 쓰던 방문을 열어봅니다.
떠나있는 아이의 집(?종이상자)이 에미를 맞이합니다.
아이 외할머니가 따숩다고 보내준 이불상자였습니다.
언제나 큰 상자는 아이의 가장 훌륭한 장난감 노릇을 했지요.
아이는 햇발동 2층 마루에 상자를 놓고
거기 창문을 내고 현관 빗장을 달고 스탠드를 가져다 등을 달고
나름 제 집이라고 꾸렸더랬습니다.
“개집도 아닌 것이...”
거기 들어가 책을 읽기도 하던 그였지요.
아이는 떠나있고 그 집 뎅그마니 있습니다.
걸리적거린다고 그래도 제 방에 넣어두었네요.
아이의 밤은 어떨 것인지...
오늘 밤은 아이랑 달을 같이 쳐다보기로 하였더랬답니다,
그러면 우리가 서로 멀리 있어도
곁에 서서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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