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10.흙날. 밤 빗방울
밤에야 대해리로 돌아왔습니다.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락샘이 서울서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40여일이나 아이를 데리고 있었던
아이의 이모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왔습니다.
1박 2일로 하는 계가 마침 있었더랬습니다,
동네계라 부르는,
어릴 적 마을에서 같이 자란 벗들이랑 한 해 한 번 만나는.
계의 총무인 이모는 간밤 내내 짐을 꾸렸습니다.
일일이 사서 먹으면 돈도 돈이지만 흡족치 않다고
하나부터 열까지 먹을 것들을 쟁이고 있었지요.
그런데 외가에서 오래 산 저 역이
그들의 이름자를 더러 기억합니다.
“옥선이 알재?”
“혹시 그 수철이집이라는 그 댁 동생?”
아, 기억이 났습니다.
얼마나 오래된 이름들인지요, 30년도 더 넘어 된 이름자들입니다.
외할머니 돌아가시고, 고향집이 대로가 된 이모에게
그들은 이제 이모의 고향이고 있었지요.
오래된 사람의 관계는 그런 것입디다.
언제 또 걸음하나 싶어
그곳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사촌동생을 끌고 나갑니다.
올해 교장이 된 이모부는 쪄놓은 약밥을 아주 맛나게 드셨습니다.
지난 대보름에 넉넉히 해서 얼려두었던 것을
여기도 한 덩이 가져왔더랬지요.
담에 올 때도 좀 해와야겠다 싶데요.
봉하마을을 갈까 하다 김해 수로왕릉과 한옥체험관에 갔습니다.
수로왕릉!
이곳 문화제 백일장에서 글을 쓴 적 있습니다.
대학을 갓 들어갔던 그때 잠시 서울을 떠나
고교 은사님댁에서 입주과외와 그룹과외를 하던 시절이었지요.
받았던 메달이 오랫동안 방에 걸려있었더랬습니다.
이십년도 더 된 시간은
왕릉 말고는 비어있던 그곳을 집들로 빽빽이 채우고 있었지요.
"들렀다 가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 외할머니댁도 들립니다.
달골 햇발동 거실에서 쓰라고 가스난로를 챙겨주셨습니다.
이 골짝 추위가 늘 걸리시는 겝니다.
겨울초로 담은 김치도 한 통 실렸지요.
시금치도 어마어마하게 다듬어 주셨답니다.
어머니 없는 삶은 얼마나 서글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