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18.불날. 비

조회 수 923 추천 수 0 2010.06.03 16:33:00

2010. 5.18.불날. 비


비 옵니다, 많이 내립니다.
“다시 5.18!”
벗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산야는 비 내리고 더욱 푸릅니다.
그해 5월도 그러했을 테지요.

우리 교실의 3학년 여자 아이 하나는 자폐아입니다.
오늘 그는 자꾸만 창밖을 보았습니다.
“OO는 비가 좋은가 봐.”
후덥지근했던 끝이라 누구라도 그 비가 반갑기도 했을 테지요.
OO는 창문 가까이로 가 팔을 뻗치기도 했습니다.
비가 그 아이의 손에 닿았지요.
“쟤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까?”
그 아이를 아는, 지나가던 한 어른이
가련하단 눈으로 제게 동의를 구하듯 던진 말입니다.
그런데 OO는 타인과 눈으로 소통하지는 못하지만
대신 자기 안의 세상에서 만나는 것들과 끊임없이 얘기를 나눕니다.
조금만 이상해도 음식을 골라내는 우리 교실의 △△는
우리들이 다들 비릿해서 뱉어내는 아끼시 꽃을
저는 생으로 맛나게 먹을 줄 압니다.
말이 제대로 안 되는 □□는
모든 말을 다 알아듣고 눈치 또한 여간이 아니며
곧잘 환하게 인사합니다.
생명력이 느껴지는 인사를 말입니다.
그들은 즐겁습니다.
무수한 생각들을 하고
무수한 것들을 발견하며
무수한 얘기를 쏟아놓습니다.
세상에, 무슨 재미로 사느냐니요?
어쩜 그 아이가 우리를 향해 그렇게 말할지도 모르지요.
“아줌마는, 혹은 선생님은, 무슨 재미로 사나요?”
그래요, 그대는 무슨 재미로 사시나요?

방과후에는 주로 아이들이
원적학급에서 통합학급으로들 돌아옵니다.
오늘은 종이접기와 함께 하는 미술놀이가 있었지요.
도토리를 접어 다람쥐식사시간을 그리고
수박씨를 접어 붙이며 그릇에 놓인 수박을 완성기도 하였답니다.
즐거웠습니다.

오후에는 아이들을 위해 부침개를 부쳤습니다.
비 온다고 이른 아침 묵은 김장독에서 김치를 꺼내 총총 썰어왔더랬지요.
후라이팬, 뒤집개, 기름, 반죽, 접시, 후식...
“아주 살림을 들고 오시네.”
샘들이 바리바리 들고 들어선 제게
한 마디씩을 보태셨더랬지요.
마음과 몸 더 내기!
“옥샘 음식솜씨가 세상에서 최고예요.”
5학년 ◇◇는 뭔가를 해줄 때마다 인사를 거르지 않습니다.
비 내리고, 양철지붕에 떨어지는 비처럼 기름은 토닥토닥 튀고,
아이들은 저토록 환하게 웃고...
아아, 자꾸만 이 학급을 떠나고 싶지 않아집니다.

지역의 대학도서관에 다녀옵니다.
아이가 못다 읽었던 장편이 거기 있다는 걸 알게 됐던 게지요.
빌려오는데, 뜻밖에도 아이가 침통해합니다.
“그토록 읽고 싶어하더니...”
“로마가 쇠퇴의 길로 가는 걸 읽기가 겁나.
이제까지는 융성기여서 재밌었는데 이제는...”
그토록 아이를 흡인하는 책이라니...
저도 언제 꼭 읽어봐야지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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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5.18.불날.흐림 / <로마의 쇠퇴>

로마인 이야기 1권부터 5권까지는 로마의 강성기, 6권부터 9권까지는 로마의 안정성장기였다. 무려 7~800년 동안 성장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보게 될 10권~15권은 로마의 쇠퇴기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로마인 이야기 11 종말의 시작」
「로마인 이야기 12 위기로 치닫는 제국」
「로마인 이야기 13 최후의 노력」
「로마인 이야기 14 그리스도의 승리」
「로마인 이야기 15 로마세계의 종언」
로마는 그리스도가 무너뜨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는 로마의 천년대계 정신을 이교도라며 묻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로마의 융성, 강성기여서 이야기가 재밌었지만, 이제부터는 쇠퇴기라 책읽기가 약간 무섭다.
섭섭하다. 마치 로마제국이 오늘까지 건재해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 같이 망할 것 같다.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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