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27.나무날. 맑음 / 모내기

조회 수 968 추천 수 0 2010.06.08 13:49:00

2010. 5.27.나무날. 맑음 / 모내기


산마을이 훤합니다.
보름이야 낼이라지만 이미 달 다 찼네요.
“엄마는 이런 날 좋지?”
“응?”
“내가 저기도 있고 여기도 있어서!”
“하하, 그러네.”
‘우리집 보름달, 엄마의 곰돌이, 아빠의 괴물’,
아이를 부르는 말이라지요.
보름달 집안에도 떠서 아이구, 대낮같은 밤입니다요.

이른 아침 비워두었든 고추밭 한 둑에
오이고추를 심었습니다.
논농사는 물 대는 일이 절반입니다.
우리 논으로 흘러들어오는 도랑을 거슬러 올라
소사 아저씨는 오전 내내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허리 한 번 폅니다.
발목까지 감기겠는 녹음을 보다가 지그시 눈을 감고
튤립나무를 지나는 바람 소리에 귀기울입니다.
아, 자연이 없었음 생이 얼마나 건조했을라나요.

“내가 우리 논 하고, 바로 가서 해주께.”
이장님이 나서주셔서 모내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모밥을 준비합니다.
이제 더는 모심는 날 모밥을 내는 집이 없는데
마을 들머리 삼거리에 있는 논이어 그러한지,
앞마을과 뒷마을의 한가운데 있는 학교라 그러한지,
그런 날의 의미를 놓치지 않으려는 걸 알아 그러한지
물꼬 논 모를 내는 날은
온 동네 어르신들 다 나오셔서 한 마디씩 보태시고
밥 한 공기에 술 한 잔 돌리고 수박 한 조각 드신답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데,
어라, 정오가 다 되어 일하시던 분들과 점심을 드시러 댁으로 가셨네요.
“내 일 덜어줄라 그러는 갑네.”
점심 먹고 하신다 하니
그저 막걸리나 한잔 내면 되겠다 하고
상을 차려놓고 그제야 마을을 빠져나갔더랍니다.

모를 내주는 이들과 먹으려던 밥상이었는데
일찌감치 댁 일을 먼저 하고 점심을 드시러 가셨다 하기
식구들끼리 조금 때 이르게 앉았습니다.
달골 식구들도 내려오셨지요.
류옥하다 선수의 밥상머리 작은 플룻 공연도 있었답니다.
요새 베토벤의 교향곡 40번(아, 일부분요, 일부분)에 흠뻑 빠져있다지요.
읍내 나가는 길에는 진주의 벗이 주문한 쌀을 찧어 보냅니다.
그 편에 사과잼도 하나 넣었지요.
가끔 보내오는 글월을 읽으며
함께 세상을 건너가는 어깨 겯는 벗이 있음이
퍽 고마운 일이다 싶답니다.
특수학급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달려와 양쪽 팔에 매달립니다.
오전에 얼굴 보지 못해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같이 보내는 달이 거의 다 차가네요.

해가 지고도 한참 지난 저녁이지요.
농사일에 밀린 댁들은 그제야 저녁을 차립니다.
이장님이 오셔서 30여 판의 모를 심어주신 오후였습니다.
오셔서 저녁 같이 들자 하였지요.
“우리 아직 멀었어. 안 먹는다니까.”
어둠 내리도록 들깨모종을 심으셨습니다.
“기다리니까 꼭 오셔야 해요.”
사람 몇 번 보내서야 오셨더랍니다.
“모가 없어서 어쩌나?”
나머지도 마저 해주시려지만
아직 모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댓마 신이네 오늘 모 냈는데, 거기 전화 한 번 해보지?”
그런데, 딴 댁에 주게 되었다네요.
좀 더 기다려보자 합니다.
그것만 심자 했지만 논 갈아놓으니 맘이 또 다르단 말이지요.
다 심고 싶은 겝니다.
“둘레에 빈 곳들 먼저 손모 하고 있다 보면...”
어찌 어찌 또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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