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계자 닷샛날, 2010. 7.29.나무날. 비 지나다 / 산오름


해병대캠프, 항공캠프, 영어캠프를
이 방학에 갔거나 갈 규범이가 그랬습니다.
“다음 주 꺼 신청해두 돼요?”
다른 걸 취소하고 여기 남으면 안 되냐구요.
힘든 산오름 뒤였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나, 다음은 자리가 다 찼네.”
다음 계절에 오기로 하였지요.

이른 아침, 샘들이 김밥을 쌉니다.
‘해 따러 가자’입니다, 산오름이지요.
‘오늘 아침 일어나 졸린 눈으로 항상 하고 싶었던 김밥싸기를 해보았다. 그런데 이걸 하나의 일로써 실제로 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다시 한번 느꼈다. 아이 때 꿈꾸던 모든 일들이 환상이 아니라는...’(새끼일꾼 인영의 하루 정리글에서)
보통 90줄 싸는 김밥을 싸다보니 100줄 되었습니다.
“남겠다.”
그럴까요?
그러면 또 내려와 달걀 입혀 구워먹지요, 뭐.

아이들을 깨우고 떡국을 멕이고
한편, 산에 갈 짐이 꾸려집니다.
‘아이들 옷을 챙기기도 하였는데 뭐 그리 많이 챙기는지(*챙길 게 많은지)’
(새끼일꾼 도언의 하루 정리글에서)
산에서 우리가 어떤 상황을 맞닥뜨릴지 모를 일이니
여벌옷도 잘 챙겨가야 합니다.
약품은 기본이고,
들일 데 없어 산 곳곳에 둔 물꼬 해우소에서
(나무 뒤에도 바위 뒤에도 저어기 모퉁이에도)
시원하게 볼 일 볼 이들을 위한 화장지도 잘 챙겨가지요.
그런데,
할 것도 많은데, 왜 하필 온 하루를 다 쏟아
비가 오나 눈이 내리나 바람 부나 굳이 우리는 산으로 가는 걸까요?

대문에 모였습니다.
우석이가 제(자기) 신발도 없고, 게다 맞는 물꼬 신발도 없어
복장검사에서 걸립니다.
마침 제 운동화를 신기지요.
(그런데, 우석이가 산을 내려와
저녁에 그 신발을 잘 챙겨 돌려주며 인사 잊지 않았지요).

민주지산으로 향합니다.
물한주차장까지 버스를 탈 거지요.
1.5km를 걸어갑니다.
길가에는 볼 것도 많아 자꾸만 걸음을 세우지요.
계원이며 소윤이며 민정이며도
자꾸만 걸음이 더뎌집니다,
벌써부터 땀 삐질삐질 나고.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 몸을 꼿꼿이 세우고 걷는 거에 집중하자.’
서현샘은 또 다른 걷기명상을 시키고 있었답니다, 하하.

물한주차장에 모여 산에 오르는 이의 자세에 대해
몇 가지 듣습니다.
산에 사는 자들의 집에 들어가면 어찌 행동해얄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는지,
먼저 닿은 사람이 뒤에 오는 이들을 위해 할 말,
서로를 잃었을 때의 신호, ...

오르기 시작합니다.
우리들이 시작점이라는 부르는 곳까지는
계곡을 그대로 따로 오르는 길이지요.
“물소리가 시원해요!”
동현이었습니다.
‘전나무 숲 속에서 야생의 기운이...
심신이 정화되는 느낌이...‘.
현아샘의 느낌은 그러하였네요.
힘든 걸 이기자고 아이들이 목청껏 동요를 부르기도 하였지요.
“두꺼비다!”
그래요, 거기 그네들 살지요.
처음 보았다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시작점에 닿았지요.
골이 깊으니 전하는 이야기도 그만큼 많습니다.
“이 산 아래 마을에 아주 커다란 부자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있었겠지요.”
어느 해 흉년이 들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소년이
그 집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갑니다.
곳간에 곡식이 넘쳐나지만 나눠주지 않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화가 난 소년은 커다란 분노로 해를 삼켜버렸지요.
세상은 깜깜해졌고, 사람들은 그것이 소년 때문임을 알게 되자
호미 낫 곡괭이들을 들고 부자를 찾아갑니다.
그제야 놀란 부자, 자신이 해를 따 오마 합니다.
가장 높은 산에 올라 까치발로 해를 땄는데,
그만 아래로 뒹굴었네요.
굴러 떨어지며 살아왔던 날들을 돌아봅니다.
두루 살펴보지 못한 자신의 생을 반성하며
다른 사람들은 그런 불행을 겪지 말라고
죽어 눈 부릅뜬 잠자리로 태어납니다.
그 산을 우리가 오르고 있는 게지요.

거기 돌 하나 얹고 소원도 비는 무데기 있어
우리들도 따라하지요.
“은결아, 너는 뭐라 빌었어?”
“엄마 잔소리 하지 마라고...”
그런 은결, 웬만큼 오른 뒤 그랬습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잔소리는 하지만 엄마가 좋단 말이지요.
그래요, 우리는 어머니가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1지점에 이르렀습니다.
사탕을 지니고 기다리마 하였지요.
“몸에 좋다면 열 개도 스무 개도 줍니다. 그러나...”
그래서 움직일 힘이 될 만큼만 나눠먹지요.
마침 그곳은 도룡뇽 서식지이기도 하여
아이들은 온통 그들을 좇아다니느라 바빴습니다.
사탕껍질은 점심을 먹는 표가 될 것입니다.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아이들은 앞서다가도 뒤서고 뒤서다가도 앞으로 갑니다.
그 사이 같이 걷는 이들이 바뀌고
다시 만나기도 하지요.
현아샘이랑 현주 진이 규범 다경 자누가
지금은 일행이 되어있네요.
그렇게들 새로운 만남이 있고 그리고 관계가 넓혀집니다.
찬일샘은 주용이를 업고 가네요.
간 밤 벌에 쏘였던 주용입니다.
쉬어도 된다 했으나 갈 수 있다 했습니다.
샘들은 그렇게 아이들 사이사이에서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하나씩 끼고 오르고 있습니다.
준수와 기훈이는 큰형들답게 우는 나경을 달래가며 갔지요.
아이들과 안에서 못다 나눈 이야기들도 꼬리를 달고 따라 올랐습니다.

2지점에 이르렀지요.
역시 물이 있는 곳입니다.
힘이 듭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질문은 끝이 없지요.
가만히 앉아 고개만 까딱까닥 하는데,
답답하면 곁에 앉았는 아이들이 묻는 아이들에게 대답합니다.
저들끼리 묻고 저들끼리 다 대답이 됩니다.

찬영이가 선두에서 걸었습니다.
그 아이 몇 해를 봐왔습니다.
얼마나 유머러스한 아이인지요.
“내가 속도를 맞추려고 이리 시끄러운 거야.
안 그러면 정상까지 30분 만에 가.
말을 해서 힘을 빼 속도조절을 해야 하니까...”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아 떠드는 찬영,
그런데 그게 다 사람을 포복절도케 합니다.
“옥샘, 우리 집은 참깨가 보물이예요
아들이 한 번 한웅큼 먹었다고 엄마가 등짝을 후려 패요.”
찬영이는 엄마 아빠 동생을 다 팔립니다.
헌데 용케 가족들을 아래로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그 집안 참 재밌구나 부러워하게 합니다.
이 친구 정말 타고 났습니다.
아주 힘이 죽죽 빠져 혼났더랍니다, 웃느라.

이제 오름길의 절반쯤이나 되려나요.
‘여기서 내려가도 반 올라가도 반 둘 다 반반인데 내려가면 안될꺼 같고 올라가긴 싫고 아 정말 답답하다. 그 순간이 큰 산을 올라갈 때 가장 힘든 점이다.’
새끼일꾼 가람이는 하루 정리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지요.

3지점.
아주 가파른 길(쪽새골)을 한동안 오르면 만나는 능선이지요.
먼저 도착한 아이들과 맨 뒤의 아이들의 거리가 한참입니다.
지금쯤 낮밥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아이들도 아직 아니 오고
어린 녀석들은 조금씩 짜증도 나지요.
기환이랑 원준이 싸우고(자주도 있는 일이지요)
형찬이랑 주용이가 싸웠습니다.
화가 난 원준이는 그예 이런 말까지 쏟아내지요.
“이 세상에 (내가)없었으면 좋겠어요. 미아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6학년 해온이와 지호가 원준을 데리고
말리고 달래고 해결하고 위로하고 있었지요.
해온이는 그런 아이입니다.
움직임을 크게 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지만
그렇게 한 구석에서 든든하게 전체를 받쳐주는 힘이 있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아이들 속에 앉아 있으면
그 계자가 마음이 놓이곤 하다니까요.
이제 두 번째인 지호도 그런 역할을 하게 되려나요.

아직 아이들은 경사길을 기어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원준이를 가까이 부르지요.
줄줄이 시끄러웠던 녀석들도 딸려옵니다.
“원준아, 그런데 그럴 때 소리 지르고 화내고 그렇게 말고
다른 방법으로 말해보자.”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안내하지요.
“야아, 물꼬 정말 좋지 않니?
놀이치료에 미술치료, 심리치료, 성격교정, 그리고 언어치료까지.
치료비 청구해야겠다.”
둘러친 자연이 우리를 순화시켜주던 닷새였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오면 보통의 아이들이건만
욕설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요.

이제 150미터만 오르면 정상입니다.
걸음을 서두르지요.
‘해를 삼킨 소년, 해를 딴 부자’의 이야기가 나올 만하겠습디다.
거기 잠자리 무수히 날고 있었지요.
“옥샘, 진짜예요!”
아이들 머리에 팔에 등에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앉는 잠자리들이었지요.
비가 잠시 지났던 터라 온통 구름으로 둘러쳐져 있었지만
그래서 저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높은 곳에 올랐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으며
산꼭대기는 그렇게 산을 오른 우리에게 멋진 선물을 안겨주었답니다.
‘재이의 손을 잡고 “이영차~”하는 순간부터 산행을 마치고 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내려올 때까지 기적과 같이 한 발자국 디딜 때마다 굉장히 산뜻했다. 정상에 다다를 무렵, 하늘의 빛이 초록색깔 잎들 사이로 막 비칠 때 재이에게 하늘을 한번 보라고 했다. 그리고 재이의 눈을 들려다보는데 와.. 정말 아무에게서나 볼 수 없는 순수한, 맑은 눈동자가 보인 것 같아 산행 내내 너무 이쁘고, 즐거웠다. 오늘 하루 종일 너무 즐거웠다. 아이들이 서로 협력하는 모습도 보고, 유닥 고학년이 많은 이번 계자에 큰 친구들이 어린 동생들을 챙기는 모습도 너무 기특했고..’(새끼일꾼 인영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다시 3지점으로 내려와 김밥을 먹습니다.
“...매년 먹어도 매년 맛있는데,
그래도 그때 그때 먹는 김밥이 젤 맛있어요.”
새처럼 지저귀는 자누입니다.
아이들이 소리칩니다.
“김밥 남은 거 없어요?”
이런, 그 많은 김밥이 어디로 다 간 걸까요?
내려가면 먹을 파이도 마저 꺼내 먹습니다.
그리고 오이도 꺼내먹지요.
다 다 도시락통을 비워낸 아이들이었답니다.

이제 달려 내려가지요.
길을 잃어도 좋습니다.
모든 물은 아래도 갈 것이고
우리는 물한주차장에서 모일 수 있을 겝니다.
“쌤, 보고 싶을 거예요.”
따뜻한 우리 재창이 서현샘을 부르더니 그랬다지요.
‘산에서 내려오는 길, 정말 큰 산답게 그 안에는 많은 일이 숨어있다.
아이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넘어지고 재잘거리고...’(새끼일꾼 가람의 하루 정리글에서)
희수랑 규한이 다투고
기환이 준수와 부딪히기도 하였습니다.
2지점에서 다리를 쉬고 다시 1지점에서 한참을 놉니다.
아이들 얼룩진 발을 닦이지요.
마치 가장 섬기는 자의 자세를 가진 듯한 착각이 들며
마음이 어찌나 좋던지요.

물한주차장에서 5시 10분 버스에 오르고
다시 흘목에 내려 대해리로 걸어 들어옵니다.
천국 혹은 정토로 가는 길이 그러할 겝니다.
아이들이 재잘대고, 노래 흐르고, 서로를 부르며 좇아가고...

“다 씻겼어요, 검사해가며.”
세아샘이 그랬지요.
그런데 그 높은 산을 내려와 아이들은 또 뛰고 있습니다.
준수는 와서도 진이를 업고 다니네요.
진이 재이는 이번 계자의 스타였습니다.
무슨 일이었더라, 진이가 눈이 아프다 울었던가요,
그런데 둘러보니 그 아이를 에워싸고 아홉 명의 아이들이 몰려있더군요.
현주도 진이를 목마 태우거나 업고 다닙니다.
참 따뜻해지는 시간들이었습니다.

한데모임, 우리는 왜 산에 올랐던 걸까 돌아보았습니다.
저마다 한마디씩 보탰지요.
“비가 오는데도 간다면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준수던가요.
산의 기운의 받으라고, 몸이 튼틈해지라고, 서로 협력하라고,
살면서 어려운 길도 그렇게 넘어가라고, 몸과 마음의 찌꺼기를 다 버리라고...
‘힘든 산행이었지만 한데모임에서 아이들의 소감을 들으며 눈물이 났다. 이 맛에(?) 하시는 건가요?’(현아샘의 하루 정리글에서)
‘잘 놀다 가자 했는데, 아이들 정말 ‘잘’ 놀고 가는 것 같다. 쌤들은 좀 힘들었지만.’(서현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선영샘은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행복도 습관이라서, 행복한 기억,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행복도 느낄 수 있다는 옥샘의 말이 떠오르는 하루였어요.
이번 자유학교 물꼬에서도 행복했던 기억, 경험을 듬뿍 담아갑니다.
처음 아이들을 마난고, 어색했던 시간을 지나, 친해지고 익숙해져 가면서 드디어 오늘 그 절정을 느낄 수 있었던 ‘해 따러 가자’로 하루를 듬뿍 보냈습니다. 어깨에 멘 가방도, 가파른 산길도, 아이들을 이끌고 데려가는 것은 혼자 산행을 할 때와 무척 다르더라구요. 정말 온통 아이들에게만 집중을 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고 그때마다 많은 답변도 필요했어요..’

아직도 힘이 넘치는 아이들 고래방으로 건너가 강강술래를 하고,
장작불가에 모여 목청껏 노래 부르고,
그리고 구운 감자를 들고 또 온 데를 뛰어댕겼습니다.
저 어린 것들 저 가녀린 발목으로 그 높은 산을 올랐고,
무사히 내려왔더랬지요.
그리고 그만큼 배움이 함께 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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