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계자 나흗날, 2010. 8. 4.물날. 맑음

조회 수 1055 추천 수 0 2010.08.19 00:37:00

139 계자 나흗날, 2010. 8. 4.물날. 맑음


이번 계자 첫날 밤,
저 아랫마을에서 농장을 하고 있는 한 어르신 내외가 다녀갔더랬습니다.
생활고에 찌들린 친척 일가 셋이 동반자살을 시도했더랍니다.
그런데 스무 댓 살 먹은 딸아이가 살았더라네요.
부모랑 같이 죽음의 길을 나서서
달랑 혼자 살아남은 그를 어찌한답니까.
그 처자를 돌보고 있으면서 도움을 청하러 건너온 걸음이었댔습니다,
어쩌냐고, 저 아이를 어쩌면 좋겠냐고.
계자 끝내놓고 모여앉아 길을 찾자 했지요.
물꼬의 오랜 순기능 가운데 하나입니다.
쉼의 자리이고 치유 혹은 위로와 위안의 자리!
삶을 어루만지는 역할 어디메쯤에 있는 거지요.
고마웠습니다, 찾아와서.
그런데, 이곳에 있는 우리들 역시 또한 그러합니다.
우리 대부분 모두 어떤 식으로든 치유가 필요하지요.
우리 여기서 그거 합니다, 애고 어른이고.
계자도 대표적이지요.
아이들 사이를 떠돌며 듣는 그들의 이야기가 어루만짐을 필요로 합니다.
꼭 시설아동이나 극빈층 아이가 아니어도
저마다 제 삶 무게가 다 있습니다.
그래서 ‘무식한 울어머니’ 늘 그러셨지요.
천석꾼은 천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가지 걱정.
그게 삶이겠습니다.
그 삶, 이 산골에서 아이들이랑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냈더랍니다.

아침, 날이 그러데요, 달골 올라가라데요.
연일 무더웠는데,
그런 속에 비도 다녀갔는데,
일정 사이 사이 잘 쓰라고 날이 용케 길을 열어주던 시간이었습니다.
달골에 모여 꿈꾸는 것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유기농사과즙을 한 잔씩 마시고 내려왔지요.
아침부터 운동 좀 했지요, 아이들.
그래서 가마솥방의 아침 한솥뎃밥은
아이들 위로하는 그 ‘무엇’이었더랍니다요, 하하.
참, 두 준우가 달골 올라가며 땍땍댔습니다.
한 준우가 반쯤 올라갔을 때부터 힘들다 했지요.
“야, 0준우, 니가 애기냐, 징징대지 좀 마.”
어느 준우가 어느 준우에게 그랬을 거나요?

‘손풀기’ 마지막날이었습니다.
같은 사물을 보고 내리 사흘을 그려 왔더랬습니다.
자신의 그림에 대한 3일의 변화에 대해
아이들이 의견을 주고받았지요.
빛에 따라 각도에 따라 사물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리고 날이 감에 따라 그것이 어찌 또 달라지는가,
침묵 속에 집중하는 명상에는 얼만큼 다가갔는가,
손에는 어느 만큼의 자극이 되었는가...
처음엔 열심히 했는데 마음이 게을러지다가 정신 차렸다고도 하고
나날이 발전했다며 열심히 해서 그렇다 뿌듯해도 하고
차츰 엉망이었는데 결국 마음씀이 그랬다 반성도 하고...
결국 우리는 그림을 그리며 마음의 흐름이 어디로 흘렀는가를
드러난 그림을 통해 다시 읽어보았더랬지요.

‘보글보글’.
그림동화를 한 편 읽은 뒤 만두를 빚었습니다.
“제 깊은 걱정이 뭐라구요?”
아이들이 대답합니다.
“샘들요.”
그렇습니다.
집집이 만두를 빚기 시작하자마자
호떡집도 아닌데 불이 났더랬습니다.
글쎄, 샘들이(물론 아이들도 섞여 있었지요) 장난치다 방문 유리창을 깨고
거기 재훈샘(사건의 장본인이기도 합니다)이 유리조각에 찔린 일이 있었지요.
아고, 늘 어른들이 문제라니까요.
게다 우리의 새끼일꾼 경철선수도 어제 손목을 접질렸더랬는데,
오늘 영 시원찮습니다.
나름 예서 치료를 해보았는데, 조금 더 시도하고
아님 병원엘 가얄지도 모르겠네요.
‘내 딴에는 팔목 아픈 것을 내색하지 않고 설거지 하는 등 노력해보았지만, 손목이 아픈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고마웠던 것은 주위의 반응이었다. 대동놀이시간에 자고 있었는데 깨우지 않고 애들이랑 놀고 설거지하는데 배려를 해주고... 고마웠다. ’(새끼일꾼 경철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잘 생긴 만두’는 채영 상한 선영 지인 소은 선화 강인 서영이가 빚었습니다.
상한이가 문제가 좀 있었지요.
그런데 우리 6학년 서영이가 조근조근 달랬더랬습니다.
“상한이 참 잘 만드네.”
타이르는 건 이렇게 하는 거예요,
하며 힐끗 샘들도 쳐다보며 말이지요.
‘때깔 나는 만두’에는
지은 상원 예현 채현 은희 도균 가야 호정 승훈이가 있었지요.
후딱 한 판 군만두 부쳐 만두피네에 나눠도 주고
그리고 손 빠르게 찐만두를 위해 가마솥방에 젤 먼저 도착했더랬답니다.
만두도 때깔 나던 걸요.
이름, 그거 때로 아주 중요합니다요.
‘참 고운 만두’에는
허윤 지원 채원 예원 소은 지원 준우 신명 고겸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보고 들어가긴 간 걸까요?
정말 곱게들 빚었고,
청소까지 잘 해주었다 샘들 칭찬이 이어졌댔지요.
‘용감한 만두’는 용감했습니다.
건 용균 건표 유현 형찬 태풍 준근이 있었지요.
건 용균 건표 준근이 특히 열심히 도왔더라나요.
준근이는 만두 굽던 대목에서
자기가 꼭 돕겠다 더욱 열심히 움직였더랍니다.
건표는 해봤다고, 하기야 벌써 물꼬 몇 년차인가요,
만두 빚는 법을 아이들에게 열심히 알려주었다는
찬별샘의 칭찬이 넘쳤답니다.
‘빛나는 보자기’에선 하다 부선 영우 승범이가
만두피를 만들었습니다.
사람들 말이 영우랑 승범이가 그리 진중한 아이들인 줄 몰랐다나요.
어찌나 열심히 피를 밀던지요.
부선이와 하다야 일찍이 이 공장의 숙련공들이었더랍니다,
지난 겨울에 이어.
생산부 마지막 공정과 영업부로
서로 손발도 척척 맞추었더랬지요.
다음 어느 계자에는 이 보자기들 다시 다 모여
이대로 만두피공장 차리자했습니다.
그리고 만두피에서 남은 반죽으로 끓여낸 칼국수는
어느 집에서든 건너온 모두가 잔치국수처럼 먹었더랍니다.

아이들, 틈과 틈마다 일도 많고 탈도 많고,
그만큼 아이들 마음도 성큼성큼 쑥쑥 크는 걸 보지요.
우리들은 흔히 준비한 것만 보기 쉬운데
사실 아이들은 그 너머에서 더 많은 것을 채워냅니다.
일정은 일정대로 아이들을 건드리지만
무수한 틈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놀고 쉬고 그리고 더 깊이 배우는 게지요.
끼리끼리 모여 놀이를 즐기고 수다를 떨고 책을 읽고 공을 차고
그리고 마당을 거닐면서 말입니다.
이곳에선 아이들이 책방도 퍽 사랑합니다.
글을 몰라도 좋습니다.
‘채현이는 시간 날 때마다 책읽어달라고 하고 땀나는데 힘 드는데 읽어달라고 하고’
재훈샘은 툴툴대면서도 읽어 달라 하면 또 읽어주고 있었지요.

바깥에서 하는 ‘대동놀이’가 있었습니다.
여름날은 뭐니 뭐니 해도 물이 최고이지요,
그것도 한껏.
날이 썩 맑지는 않으나 그래도 더운 기 훅 했습니다.
불 앞에서 음식도 하고 나온 참이니 더했겠지요.
운동장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한껏 달리고
물을 뒤집어쓰고 춤추었더랍니다.
그런데 우리의 00, 또 싸웠습니다.
이번에는 윤이였네요.
(저것들 산에 꼭 데려가야지 싶습니다.
산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걸 가르치던가요.)
하나 되어 놀던 그 끝에 물가까지 다녀왔지요.
남자 씻는 곳에선 성재가 제 씻는 것을 놓고
태우샘을 도와 아이들을 먼저 챙겼습니다.
참 따스한 그 아이입니다.

저녁밥을 먹고, 그래도 ‘연극놀이’를 버릴 수가 없었지요.
한데모임을 놓고 걸로 대신하자 의견이 모였습니다.
우리가락에서 들은 판소리 춘향가를 연극으로 만들어봅니다.
모둠마다 장면을 정해 이야기를 이어붙였지요.
그런데, 장면마다, 웃느라 아주 배가 사라지는 줄 알았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그간 보았던 어떤 연극보다
멋진 무대를 만들어내고 있었지요.
그런 순간, 영상녹화를 아쉬워한답니다.
화려한 조명과 음향 아래
온갖 동물들이 등장해서 역이 없는 아이가 없고,
칼 찬 춘향이를 표현하기 위해 작은 아이가 목마를 타고 있고,
목소리 혹은 이름표를 통해 1인 다역도 아주 간단히 해결하고...
춘향에게 몽룡이 바치는 꽃은 멀리서는 그럴 듯하였는데,
알고 보니 종이를 말아 거기 제기를 얹었더랬지요.
성공한 공연 뒤엔 거기 몸 바친 샘들이 있었습니다.
새끼일꾼 진주의 노래방 춘향춤은 정말 압권이었고,
아비역의 진혁샘의 꽃다발 뺏는 연기도 일품이었으며,
새끼일꾼 경철의 여러 역은 아주 우리를 구르게 했더랍니다.
류옥하다가 있어서 척척 해냈다는 아람샘네,
사람이 모이면 누군가는 나서는 이가 꼭 있지요.
그게 적절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인데,
하다가 이번에는 전자였던가 봅니다.
소품 준비에도 기지를 발휘했더라지요.

‘연극놀이는 준비나 정리 때문에 쌤들이 가장 힘들어서 그닥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 연극놀이는 정말 재미있었어요. 준비도, 대사도 아이들의 머리에서 나왔고 소품도 아이들이 준비해줘서 정말 수월하게 했구요. 보는 내내 계속 웃었어요.’(아람샘)
‘사실 우리 모둠은 대사 없이 할려고 했는데 대사 크게 해야 한대서 그냥 자기 하고 싶은 대사를 하랬는데 반응이 좋아서 좋았다.’(새끼일꾼 윤정)
‘짧은 시간 동안 분장이며 대사를 어떻게 준비해냈는지 신기했고 정말 모든 모둠이 연극할 때 정말 재밌었다. 나는 분장해주고 맡은 역할을 알려주는 이름표 만들었는데, 아이들 분장시켜주길 잘했다는 생각했다. 분장하는 걸 좋아했고, 분장한 아이들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찬별샘)
‘춘향전 앞부분을 했다. 의외로 역할이 잘 떨어졌다. 경철쌤이 춘향이 역할을 맡아서 모든 사람들을 경악시키게 하고 많이 웃게 해줬다. 오늘 밤은 많이 웃고 지나갔다.’(수지샘)
‘연극은 아이들이 같이 하는데 4모둠이 서로 모이고, 한꺼번에 집중이 안돼서 활동하기 힘들다. 그래서 5분 남기고 다 준비했는데 그 치고는 재밌고 잘한 것 같다. 정말 정말 재미있었다.(희중샘)

그리고 샘들 하루재기.
새끼일꾼 윤지는 하루 정리글 모퉁이에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물꼬는 와서 힘이 들어도 힘이 들어야 더 좋은 것 같다. 정말로 물꼬 왔다는 느낌도 들고, 물꼬에서는 몸이 그래야 할 것 같다.’

내일은 산에 갑니다.
그 안내로 한데모임을 대신했지요.
대동놀이야 이미 낮에 했더랬구요.
어쩌면 우리는 닷샛날에 있는 산오름을 향해
모든 일정을 꾸려왔던 건 아닐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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