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계자 닫는 날, 2010. 8. 6.쇠날. 오후 한 때 소나기

조회 수 1037 추천 수 0 2010.08.20 02:57:00

139 계자 닫는 날, 2010. 8. 6.쇠날. 오후 한 때 소나기


간밤 늦도록 놀았으니
애고 어른이고 늘어졌겠지요.
그런데, 너무 늦어져버렸습니다.
다음날을 위한 단도리를 끝날 밤에 꼭 하는데,
그거 놓쳤다고 이리 되었을 려나요.
아침을 먹고 샘들이 감나무 아래서 잠시 모였습니다.
아이들을 기차에 태워 보내는 순간까지
우리가 그들 부모로서,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놓치면 아니 된다,
그런 다짐이었지요.

해건지기는 이불을 털고 개는 걸로 대신합니다.
아침 밥상 끝엔 작은 생일잔치도 있었네요.
얼음케Ÿ??이름만 큰) 위에 촛불이 놓이고,
시루떡 위엔 도라지꽃 곱기도 했지요.
용균이며 태우샘 희중샘,
그리고 8월에 생일이 든 이들이 모였더랍니다.
물꼬에서 불리는 생일노래가 퍼졌습니다.
“나는 예쁘다,
나는 귀하다,
나는 기쁘다,
태어나서 고맙다.”
그래요, 태어나서, 태어나서 우리 모두 고마웠습니다,
케잌??깨서 나눠먹고, 떡도 쪼개 먹고.

우리가 잘 놀았으므로 하는 정리를 넘어
우리 왔을 때 맞이해준 손들처럼
우리 역시 다음에 이곳을 올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마음을 냅니다.
지금의 우리처럼 잘 놀다 가라고
먼지풀풀 털었더랬지요.
아이들이 반찬통을 찾고 걷어온 옷들을 찾은 뒤 갈무리글을 썼습니다.
이어 ‘마친보람’,
복도에 길게 늘어서 한 사람 한 사람 졸업도장을 찍으며
혹여 앙금으로 남을지도 모를 마음도 정리하였지요.

아이들이 떠납니다.
아이 마흔, 어른 열여섯이 모였던 계자였습니다.
이불에 오줌을 싼다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밤마다 뉘었습니다.
시간을 그만 놓쳐 울어서야 갈아주기도 하며
귀한 마음 더욱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는 건 손아픈 일입니다.
그 귀한 것들 데리고 있을 수 있어 고마웠고,
크게 다칠 일 없어 고마웠고
그리고 행복해해서 고마웠습니다.

성재가 귀가 아프다하였는데 그냥 보냈습니다.
전화로 몇 차례나 병원부터 챙기라 당부합니다.
모두 기차에 오른 뒤
류옥하다도 이비인후과를 다녀오고,
새끼일꾼 경철도 손목에 방사선사진을 찍습니다.
경철이는 괜찮은데,
하다는 귀에 물이 들어가 곰팡이 폈습니다.
혹여 다른 아이들도 그럴세라 걱정 입니다.

영동역에서 아이들 갈 때 반찬을 미처 못챙겼다며
건어물을 한 아름 안겨준 세쌍둥이 엄마가 있었고,
유기농 수박들을 차에 실어준 부선네가 있었습니다.
마음을 내고 더 내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참, 부선이랑 많은 얘기를 나누고파서 기다리기도 했던 계자였는데
다른 날을 기약했습니다.
그 아이 남겨준 글 한 편이
이 시대를 건너가는 어려움은 어른에게만 있는 게 아님을
골똘히 생각케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늘 훨 강하지요.
그들을 믿습니다.

밥바라지를 오셨던 이정석님 박지희님 급히 가실 일이 있어
아이들이 학교를 나오자마자 뒷정리를 못하고 떠난다 미안해하셨습니다.
남은 일은 또 남은 이들이 하지요.
그렇게 맞물려 앞과 뒤가 돌아가는 이곳이랍니다.
그간만도 충분했습니다, 훌륭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부디 편히 서울길 오르시길,
물꼬도 뭔가 나눠드릴 것 있길.

샘들 갈무리모임이 읍내 칼국수 집에서 있었습니다.
먼저 떠난 서현샘과 찬일샘,
어렵게 시간을 더 내서 이번 계자 앞부분을 잘 맡아주었습니다.
재훈샘과 진혁샘, 훌륭하게 잘 성장해서 다시 만나 기쁩니다.
아람샘, 새끼일꾼에서 품앗이샘으로 잘 넘어가주었습니다.
세아샘이 몸과 마음을 많이 내고 있었고,
수지샘과 찬별샘, 대학 1학년 첫 여름방학을 쏟아주어 고마웠습니다.
생각해보면 고작 나이 스물,
그런데 참 많은 걸 해낸 그들이었답니다.
새끼일꾼 진주, 경철, 윤지, 태우, 윤정,
늘 물꼬의 자랑인 이름자들입니다.
이번 계자의 큰 특징으로 기억될 어느 때보다 멋진 연극무대는
그들의 헌신이 분명 바탕이었을 겝니다.
“일 처리 두 번하지 않게...”
희중샘은 진행을 위한 발언도 도와줍니다.
그저 허허거리던 그도
이제 전체를 꾸리는 안목으로 하는 얘기들이 많아졌습니다.
올 여름도 내리 세 차례의 계자를 지켜가는 그입니다.
어른 손이 많이 모자라 각자에게 가는 할 일이 많았던,
전체가 좀 원활하지 않았던 계자,
그래서 밥바라지 샘들도 힘이 들었을 듯합니다.
부엌에 보탤 손도 그만큼 모자랐으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두 분이 거뜬히 해내셨습니다.
다시 고맙습니다.

다음 계자를 위한 장을 보고 있을 적 전화가 들어옵니다.
“저녁을 어찌 준비할까요?”
몇 명이 들어 오냐,
다음 계자 밥바라지 선정샘이 벌써 들어와
계자와 계자 사이를 건너가는 시간을 위해서도
준비를 해주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모든 걱정이 날아갔습니다.
그는 그런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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