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계자 여는 날, 2010. 8. 8.해날. 소나기

조회 수 988 추천 수 0 2010.08.21 02:04:00

140 계자 여는 날, 2010. 8. 8.해날. 소나기


아이들 방에 불이 꺼지고 가마솥방으로 샘들이 모이고 있는데,
6학년 세인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뒷간에 함께 가주고 있었습니다!
저 아이들을 믿습니다.
우리가, 세상이, 저들을 버려놓지만 않으면
저들은 ‘잘’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종일 카메라가 돌았습니다.
10년 넘게 영동역에서 대해리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던 버스,
지난 주 기차에 남기고 온 아이 가방을 찾아다준
버스회사 상무님 얼굴을 처음 보았습니다.
늘 역에서 아이들 가방을 버스에 실어도 주고,
오랫동안 물꼬 논두렁이기도 하신 분입니다.
그때 잠시 머물며 아이들 움직임을 보고는
물꼬 홍보영상을 만들어보고 싶다셨습니다.
당신이 하실 수 있는 일로 뭐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셨지요.
하여 이번 계자에 방송국용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셨더랍니다.
기꺼이 마음을 낸 이들이 모이는 곳,
그곳이 물꼬입니다.
그러니 아이들 마음이 어찌 좋아지지 않을 수 있겠는지요.

아침.
아이들을 맞으러 샘 셋 나갔습니다.
새끼일꾼 수진은 광주에서 동생들을 데리고 역으로 바로 오지요.
버스에 오르기 전 희중샘이 현수막을 걷는데
세훈이가 먼저 다가와서 푸는 것을 돕더랍니다.
‘인영이처럼 세훈이도 예비 새끼일꾼의 길로 잘 가고 있구나’ 생각했다지요.
일곱 살때부터 누나를 따라왔던 그 아이입니다.
그렇게 ‘잘’ 자라주고 있었지요.
그런데 역에서 다들 너무 고요한데,
유독 준하와 서울주희 (광주주희도 한몫?) 목소리 컸더랍니다.
정말 나머지는 고요한 이들일까요?
지내봐야 알 일이겠지요.
‘아이들과 이와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아이들에 대한 걱정의 마음이 역력한 부모님들을 뵈며 사뭇 책임이 막중함이 느껴졌다.’(진주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네, 그 무게로 이 아이들을 데리고 엿새를 살아갈 것입니다.
들어오는 버스에서부터 일정은 이미 시작입니다.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들어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열정이 많은 진주샘의 고민 역시 벌써부터 시작이었지요.

그 시간, 학교에서는 맞이 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무대에 공연 오르기 전 5분이 젤 바쁜 법이지요.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는 게 중요하단 걸 알고 있고, 다른 이에게도 뒤돌아봐줄 것을 요구하면서 제가 그것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제일 잘 알고 잘하는 진주에게 큰소리를 하게 됐는데 실수가 생겼을 때 옥쌤께서 저한테 뭐라고 하시는 까닭을 알겠더라구요.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익숙한 사람이 잘 이끌어가야 하는 것 같아요.’(아람샘)
늘 해도 눈이 못간 곳이 있습니다.
평상도 그러했지요.
진홍샘이 부랴부랴 나뭇잎을 쓸어내고 닦았더랍니다.

아이들이 들어옵니다.
서른다섯이 함께 할 것입니다.
(일이 생겨 재욱이는 하루 늦게 들어오기로 했지요.)
가마솥방에는 5개월 세현이와 다섯 살 하경이까지 있습니다.
먼저 안내모임이 있었습니다.
20여 분이면 여기서 지내는 모든 안내가 끝이 나지요.
마지막으로,
놀이에 몰입을 방해할 수 있는 신경 쓰이는 물건들을 금고로 보내고,
모든 먹거리들을 가마솥방으로 들고 가면
낮밥 먹으라는 종이 울립니다.

밥을 먹고 마당으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공을 찹니다.
산책도 하고 개랑도 놀고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앉아 더위를 식히기도 합니다.
몇몇은 책방을 지키지요.
이번엔 5개월 세현이를 에워싸고 가마솥방에도 여럿 있습니다.
오래 같이 살아온 마을 사람들 같습니다.
‘물꼬에 오는 아이들은 거리감 없이 금방 친해져서 5박 6일을 재미있게 놀다가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희중샘)

다음은 큰모임이 있습니다.
올여름 계자는 속틀이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서로 의논하여 메웠지요.
이번도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서로 좀 알 필요가 있겠지요.
큰모임이란 그런 자리입니다.
자기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보자고 아이들을 불러들이니
기다린 듯 소나기 내렸습니다,
퍼부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겝니다.
준비라도 한 양 쓱쓱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넘겨보며
비 참 시원히도 내렸지요.
‘아이들이 오자마자 까불락거리면서 옥쌤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기도 하였는데 아이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 기특하였다.’(새끼일꾼 현곤)

비가 잦아들고, 물놀이를 나섭니다.
아직 비 내리는데, 아이들도 가는 거려니 하고 나갑니다.
그런데 계곡에 닿으니 그 비 언제 내렸는 양 그쳤답니다.
하지만 좀 싸늘하긴 했지요.
그래도 물에 첨벙거리니 금새 땀내 날 판입니다.
무슨 해전, 해전이었답니다.
뒤늦게 진홍샘 후회 좀 했지요.
‘품앗이 선생님들도 거리낌 없이 노는 걸 보고 나도 좀 더 적극적으로 놀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혁샘은 좀 어린 아이들이 으슬거리는 걸 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계곡에서는 노는 게 맘에 들어 하는 아이도 있고 너무 추워서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내일 달날의 계곡에서는 모두가 재미있었으면 좋겠다.’
‘물날이를 갈 때 비가 와서 애들이 미끄러져서 휩쓸려 갈까 봐 걱정을 하였는데 아무탈없이 와서 걱정이 없었고 첫날이라 아이들이 누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시간이 조금 흐르니까 아이들이 친해지고 새끼일꾼이 단순하게 일만하는 줄말 알았는데 꼼꼼히 체크도 하면서 하는 것이 새롭게 알게 되었고, 내가 새끼일꾼으로서 단지 옥쌤한테 잘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것이 바람직한 새끼일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새끼일꾼 현곤)
그런데, 안경을 끼고 나갔던 현준이 안경을 벗고 교문을 들어섭니다.
“응?”
계곡물 소용돌이에 딸려 가버렸답니다.
그만큼 풍덩거리며 놀았다는 말일 테니
그 값이려니 하면 되겠지만
이런, 불편해서 어쩔 거나요?
내일 읍내를 나간다? 집으로 연락하여 보내오게 한다?
이 밤에 어떻게든 매듭을 지어야겠지요.

저녁을 먹고 한데모임.
아이들 참 훌륭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는 물꼬 입성 소회를 가만가만 들어주고 있지요.
자폐범주성장애와 정서행동장애, 학습장애가 있는 아이 몇
자주 우리들의 집중을 흩어놓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아이들을 북돋워주려고 여러 차례 한 말이기도 하지만
정말 아이들의 태도는 칭찬받을 만했지요.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우리는 이렇게 잘 듣고 잘 말하기를 끊임없이 연습할 것입니다.
노래도 한껏 불렀지요.
소리를 듣지 못해 말을 배우지 못한 이들과 소통하기 위한
손말도 노래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비어있는 속틀을 채웠지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따져보았습니다.
의견을 수렴한 아이들이 구제적인 시간계획은 샘들한테 넘겼고,
오늘밤 샘들이 시간대를 짜고 나면
낼 아침 아이들 속에서 승인절차를 거치게 될 것입니다.

춤명상.
초가 켜지고
강물 위에 둥둥 떠내려가는 배롱꽃들이 방으로 불려왔습니다.
그리고 배롱나무 춤을 춥니다.
저 뿌리에서부터 물을 길어 올려 가지 끝까지 올려 보내며
우리 삶에도 그리 기운 불어넣었습니다.
저 빛이 방을 채우듯 삶도 그리 채우기를
훨훨 떠내려가는 저 꽃잎들처럼 그리 자유롭기를...

대동놀이.
‘잘 참여를 안했는데, 오늘은 좀 참여를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했는데, 오히려 내가 재미있었던 거 같다.’(진혁샘)
대동놀이란 게 그렇습니다.
보는 것도 재미나지만 그 속에 있으면 더욱 재밌습니다.
하기야 어떤 일이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는 온갖 짐승들이 되어 고래방을 굴러다녔답니다.
그러다 사람으로 돌아와 씻고 모둠하루재기를 하러 건너갔지요.

샘들이 아이들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며 잠을 부릅니다.
미리모임에서 챙기지 않아도
이제 계자에 오는 샘들에서 샘들로 이어지는 물꼬 전통이 되었습니다.
잠자리에서 책 읽어주는 캠프는 물꼬밖에 없다는
자부심들도 깔려있지요.
무엇보다, 책 읽는 그것이 좋습니다,
이야기를 듣느라 더 쫑긋거리며 자지 않아서
외려 샘들 애를 태울 때가 있어도.
여름 밤, 혹은 깊은 겨울밤,
산골의 아름다운 밤풍경이지요.

샘들 하루재기.
가마솥방에서 샘들이 하루를 돌아보고 있을 적
처음 이리 멀리 집을 떠나온 정연이는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진주샘이 달래러 달려갔지요.
그 아이의 마지막날이 어떨까 사뭇 기대됩니다.
엿새, 긴 날도 아니지만 짧은 시간 또한 아니지요.
그 사이에도 우리 아이들 성큼 크는 걸 늘 보아왔습니다.
사람의 변화는 한순간이기도 하더란 말이지요.

진홍샘이 그랬습니다, 여기 애들은 말을 잘 듣는다.
제도학교 교사들이 오면 꼭 하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도 없고 별 수 없어서?
그것만이 아닐 겁니다.
좋은 어른들이 둘러치고 있고,
자연이 우리를 덮고 있는데,
어찌 유순해지지 않으려나요.

안정적인 부엌, 참 중요합니다.
결국 그 자리가 전체를 어떻게 받쳐주는가에 따라
계자의 질이 달라진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겝니다.
선정샘, 일찍이 훌륭한 사람이란 걸 알았더랬습니다만
여전히 그는 그러하였습니다.
다섯 달이 찬 아이를 데리고 부엌바라지를 왔습니다
(아이바라지로 진희샘이 나섰고.).
그는 정말 온전하게 자기를 드러내지않고 전체일정에 집중해줍니다.
그를 통해 많이 배우다마다요.
어줍잖게 잘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종대샘은 늘 선정샘을 최강 부엌이라 표현해왔지요.
흔히 매뉴얼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안내서가 있고 지침을 듣는다고 해서 잘해내는 것도 아닌 게
또 부엌입니다.
문제는 마음가짐, 자세라는 거지요.
미리모임 있기 이미 하루 전,
139 계자를 끝내고 갈무리모임을 할 때
저녁을 준비해놓고 기다린 그입니다.
또 저를 깊이 사유케 했지요.
훌륭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가 그리 가까이 다가갑니다.
고마울 일입니다.

아, 지난 계자 밥바라지였던 신명이네 어머니 박지희님이
여러 차례 전화 주셨습니다.
냉장고에 남긴 것에 대해서라든가
다음 계자를 위해 알려주실 말씀들이 생각나면 얼른 주신 소식이었지요.
고맙습니다.

지난 계자는 너무 더웠는데,
이번 계자는 비 매우 많다 합니다.
어떤 날들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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