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 계자 나흗날, 2010. 8.11.물날. 오후 갬

조회 수 1042 추천 수 0 2010.08.22 23:48:00

140 계자 나흗날, 2010. 8.11.물날. 오후 갬


시커먼 아침이었습니다.
늦잠을 잤습니다.
세상모르고 잤습니다.
이곳에 살면 그렇습니다.
몸이 자연에 더욱 가까워지지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평온하니 마음 늘어졌던 모양입니다.
늘 먹는 일이 젤 큰데,
순한 샘들 곁에서 마음결이 한결 말랑해지고
부엌이 안정적이니 마음이 한없이 늘어졌던가봅니다.
고맙습니다.

‘하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눈 깜빡하고 일어나면 다음날이고 물꼬를 와서 그런 것 같다.’(진혁샘)
그렇게 나흗날 아침을 맞았습니다.
날씨가 고맙습니다.
사이사이 바깥으로 움직일 때 그쳐줍니다.
농사를 지으며 이곳에 사는 삶은
하늘 더욱 고마운 줄 알게 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에도 그렇습니다.
고맙습니다.

‘손풀기’ 마지막이었습니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그게 명상이란 얘기였고,
그림, 그거 누구나 얼마든지 편하게 그릴 수 있다는 확인이었고,
그리고 그런 것을 통해서도 성찰이 가능하다는 걸 배우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흘만에도 아이들 그림이 일취월장이었지요.

그림동화 책 하나 같이 읽은 뒤 ‘보글보글’방을 합니다.
모두 모여 하기에 만두만큼 만만한 게 없지요,
구워도 먹고 쪄서도 먹고 끓여도 먹고.
‘잘 생긴 만두’집엔 서울주희 단비 재훈 세영 동선이가 있습니다.
일곱 살 재훈이가 만두를 잘도 빚었습니다.
“할머니 집에서 해봤어.”
작은 그 아이 말에 가만가만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여간 재밌지가 않습니다.
혹여 수가 틀리기도 하면 애기처럼 뻗땡기기도 하고
그러면서 아주 영감 같기도 하답니다.
아이와 노인은 닮아 있다더니
그 말 꼭 맞다지요.

현준 준우 주영 태형이는 ‘씩씩한 만두’를 빚었습니다.
사실 그 집이나 이 집이나 만두집은 꼭 같은데
아이들이 이름 따라 들어가는 걸 보면
그 이름이 또 절묘하게 저들을 묘사하게 됩디다.
것 참 재미나지요.

‘용감한 만두’에는
광주주희 원준 태웅 승호 슬찬 성빈 도형 영훈이가 보입니다.
‘저학년이 많아서 진행하기 힘들 줄 알았는데’(진행샘)
주희가 아이들을 잘 데리고 움직이더라지요.
“세 번씩 썰고 다른 사람한테 넘기자.”
칼질도 순서대로 조금씩 나눠서 잘도 하고
뒷마무리까지 깔끔하게 하였다지요.

‘어여쁜 만두’: 효정 보빈 정연 태은 동선 세훈 재욱 태양 세인 세빈
재밌지요, 이름 때문일 겝니다,
여자 아이들이 절대적이거나,
아님 정말 예쁘장한 남자 아이들 가 있더라니까요.
큰 아이들, 또 왔던 아이들이 많으니
칼을 쓰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수월하였답니다.

그런데 어느 집이었을까요,
만두를 굽다 태워 연기 자욱해서는
소방차가 와야 할 지경이었다는 소문 있었답니다.
“만두 처음 구워봤어요.”
처음 온 품앗이샘이었습니다.
그래요, 애고 어른이고 우리는 이곳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교육을 다시 받고 있답니다.

‘너그러운 보자기’에선 채원, 준하, 훈정, 상찬이가
열심히 만두피를 밀었습니다.
“조용하고, 열심히 하고, 보기 좋더라”고
오가는 어른들이 한마디씩 했지요.
심지어 아이들까지 말입니다.
“여기는 왜 이리 조용해?”
온 데가 소란한테 여기는 명상 방 같았더라나요.
단단히 일렀거든요.
우아하게 빚자고.
‘상찬이는 만두도 안 먹으면서까지 열심히 해서 깜짝 놀랐다.’(진혁샘)

집집이 만두소를 밥이랑 같이 볶아 먹고 있을 적
남은 만두피 반죽은 칼국수가 되었습니다.
물꼬에서 젤 큰 솥단지가
어느 틈에 싹싹 비워졌더랬지요.
같이 뭔가를 해먹고 치우고,
정말 귀한 과정들입니다.
배움이 어디 달래있겠는지요.

낮밥 뒤
아이들은 젖은 마당에서 맨발로 공을 찼습니다.
어제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쏟아졌지요.
어데서 그리들 놀았을 려나요.
뛰는 아이들의 표정도
보는 다른 이들의 얼굴도
아, 거기 정토가 있었고 천국이 있었답니다.

낮에 하는 대동놀이가 이어졌습니다.
이름하여 ‘너에게 나를 보낸다’.
마당을 가로지르며 달리고
쫓아다니며 물을 뿌리고
나중엔 이편도 없고 저편도 없었지요.
물싸라기 온 데를 날렸더랍니다.
그런데, 원준이 멀리서 빙빙 돌기만 합니다.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이틀이나 비 내려 빨래가 마르질 못했댔지요.
물꼬 옷을 먼저 챙겨줄 걸,
한 발 늦었더랍니다.
미안합니다.

“샘, 새앰, 새애앰...”
어차피 젖었다고 아이들이 계곡으로 가겠다 합니다.
“추울텐데...”
“괜찮아요.”
희중샘을 비롯 모든 샘들한테 동의를 구한 아이들한테
샘들 왈,
“스물다섯은 넘어야 돼.”
정말 그만큼 대문을 나서고 있던 걸요.

물놀이를 떠나고, 남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거나 자거나 빨래한 옷을 찾거나 하고 있었지요.
현준 원준 광주주희 세빈 세인 단비 영훈 도형 재훈 태웅이었네요.
그런데, 나갔던 아이들이 금새들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물꼬랑 접한 후로 그만한 계곡물은 처음이었어요.
뉴스에서 보던 바로 그 광경이...”
물꼬에서 보낸 네 번의 여름 모든 일정 가운데 최고치였다
희중샘이 전했습니다.
나지막하긴 했었으나 예전 다리가 잠기고,
우리 놀았던 바위가 다 가라앉고,
물살에 살짝 몸 넣어보는데,
‘이런 물살 때문에 사람이 죽는구나’ 싶더라 합니다.
그런데 새끼일꾼들, 가끔은 저들 즐거움에
아이들 앞에서 형님 노릇하는 것 잊고
위험한 짓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물살에 휩쓸려갈 뻔하였답니다.
아이들 그대로 따라했음 어쩌려고...
품앗이샘들한테 아주 혼쭐났더라지요.

젖었던 몸들을 말리고 있는데,
종이 댕댕 울렸습니다.
“곶감 먹어요, 식혜 먹어요!”
지난 가을 끝에 몽당계자에서 깎아 매달았던 것들입니다.
태형이도 현준이도 하다도 그때 거기 있었지요.
그만 깜빡 지나갈 참이었는데,
선정샘이 냉동실을 정리하여 찾아내놓은 것이었답니다.
훌륭한 그입니다.
‘책임진다’는 건 그런 거지요.
하나 하나 물어가면서,
정말 당신 집 부엌살림을 살 듯 부엌을 꾸리고 있습니다.
‘됨됨이’란 말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잘 배우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한테도 그리 옮아갈 것입니다.

준우가 재훈샘이랑 장난을 치다가
그 수위가 좀 과했던 모양이지요.
정말 싸움처럼 돼버렸습니다.
어느 순간 재훈샘은 정색을 하고 있었고,
혼을 낸 게 마음 쓰여 아이에게 곧 사과도 하고 그랬지요.
그런데 한참 뒤 우리의 준우 선수,
샘한테 다가가 아까는 죄송하다 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렇습니다.
우리 어른들보다 낫다마다요.

‘연극놀이’가 이어졌지요.
앞의 두 계자는 연극놀이를 저녁을 먹고 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사람이 적어 그런지
날 저물기 전에 할 수 있었네요,
조금 쫓기듯하여 그만큼 또 아쉽긴 했습니다만.
헌데 연극놀이를 끝까지 안하겠다던 장훈,
“주인공 거북이 할 사람?”했더니 손 번쩍 들었다데요.
그러니 애들의 의견을 당장 곧대로 다 들을 것도 아니랍니다.
그렇게 다들 사십여 분 준비해서 고래방으로 건너갔지요.
조명 아래들 섰습니다.
음악이 적절히 흘렀지요.
원래는 네 모둠이 장면들을 이어달려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려 했더랬습니다.
“근데, 왜 두 모둠이야?”
나름 실험을 한다고
3,4모둠이 급하게 합치고,
그걸 따라 1,2모둠도 그리 하여 극을 뭉쳤더라나요.
너무 바삐 했다보니 공연이 흡족치 않아
실망도 한 아이들도 적잖았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습니다, 다 괜찮습니다.
우리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한지도 모릅니다.
상황 안에서 충분히 즐거웠지 않았던가요.
그것만으로도 좋습니다, 참 좋습니다.
실패는 실패대로 우리에게 공부였을 겁니다.
‘연극놀이시간에는 너무 못해서 애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자기 맡은 역할까지 다 해놓고 마지막에 3모둠하고 같이 해서 우리 모둠 거의 다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금 힘들더라도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아이들을 리더해야겠다.’(진혁샘)

저녁 먹기 전 하려던 것들을 잘 끝내고 난 덕분에
한데모임도 대동놀이도 한껏 즐길 수 있었지요.
내일 여유로울려고 ‘해 따러 가자’에서 들려줄 이야기를
이 밤에 들려도 주었습니다.
그리고 산에 오를 준비를 일렀지요.
긴장 좀 하라고 험한 산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러고 나면 정작 오르면서는 수월하겠지 합니다.

그런데, 정연이가 눈이 부었습니다.
모기한테 물렸다합니다.
다른 증세가 아닌가 살펴봐야겠지요.
일단 얼음찜질을 해줍니다.
잘 때도 살펴보는데,
아무래도 눈 밑이라 약 바르긴 주저되기
밤을 넘겨보자 했지요.
보빈이는 잠자리에서 엄마가 그만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쩜 불편함이 그리 전환되었을지도 모르지요.
아람샘이 토닥여주었습니다.
‘여기 있는 동안은 내가 이 아이들의 부모 노릇을 대신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그닥 안가지고 있었는데 오늘 우는 아이들을 달래주며 아이들 잠자리를 봐주는데 아직 어린 나이지만 내가 진짜 이 아이들의 부모가 된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보호해줘야 하고 지켜줘야 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어요.’(아람샘의 하루 정리글 가운데서)
열아홉 그의 마음도 성큼 자랐을 겝니다.

어른들 하루재기.
아이들 하나하나 살핀 뒤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는 소중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재훈샘이 오늘 한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들과 아주 잘 노는 그이지요.
큰 도움입니다.
전체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고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른 몫도 요구되어야 합니다.
귀찮아서, 지루해져서, 그래서 움직임을 멈춰서는 안 될 것입니다.
툭하면 일정 중에 사라지곤 하여 들은 소리였지요.
새끼일꾼들도 한소리 듣습니다.
우리가 먼저 흥을 내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내가 재밌네 아니네가 기준이 아니라
아이들 편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요.

진홍샘은 오늘 소사아저씨를 따라가 똥통을 비웠습니다.
교사생활 십삼 년 동안
아이들이 누는 똥오줌을 치워본 일은 한 번도 없었을 겝니다.
이곳의 교사는 그런 것도 해야 합니다.
그렇게 교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곳이랍니다.

진주샘이 상담할 게 있다며 저녁답에 교무실을 찾아왔습니다.
부산한 가마솥방의 저녁 밥상을 피해
마침 5개월 세현이를 데려다 안고 있을 때였습니다.
좋습니다.
아이들을 돌보는 것 뿐 아니라
우리를 깎고 다듬고 하는 날들이기도 하지요.
상담이란 게 어디 전적으로 내담자의 문제만을 놓게 되던가요,
서로 치유되는 과정 아니더이까.
얘기를 나누며 제 모습도 되짚어보는 귀한 시간이었더라지요.

아이들 뒷간을 닦아내고 걸레를 빨려 여자 씻는 곳으로 갔는데,
마침 잠겨있고 남자 쪽은 비었더랬습니다.
걸로 들어서며 그만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지요.
사람들이 훑고 간 자리가 너무나 너저분하여 말입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누군가 놓쳤다면 다른 이가 또 살필 수도 있었을 텐데,
부엌이 너무 안정적이라 전체에도 슬쩍 늘어진다던 반성에 더해
그만 미안했습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미안한 일이지요.
더 세세히 구석구석 챙겨야겠습니다.
슬찬이가 이를 한번만 닦았다는 소식도 전해졌댔지요.
이런,
그런데, 또 그것이 뭐 그리 대술까요.
하지만, 그래도 잘 챙겨주었어야 했습니다.

내일은 더 많이 아이들의 ‘순간’에 함께 하자,
다짐하는 어른들이었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2406 2010. 8.28.흙날. 비 좀 옥영경 2010-09-07 1234
2405 2010. 8.27.쇠날. 비 올 듯 올 듯 옥영경 2010-09-07 1136
2404 2010. 8.26.나무날. 소나기 옥영경 2010-09-07 936
2403 2010. 8.25.물날. 소나기 옥영경 2010-09-07 932
2402 2010. 8.24.불날. 오후 흐렸으나 옥영경 2010-09-07 1135
2401 2010. 8.23.달날. 비 온다더니 소나기 아주 잠깐 옥영경 2010-09-07 998
2400 2010. 8.22.해날. 오늘도 무지 더웠다 / 영화 <너를 보내는 숲> 옥영경 2010-09-07 1232
2399 2010. 8.21.흙날. 폭염경보 옥영경 2010-09-07 1021
2398 2010. 8.20.쇠날. 소나기 옥영경 2010-08-30 993
2397 2010. 8.19.나무날. 폭염주의보라던데 옥영경 2010-08-30 1051
2396 2010. 8.18.물날. 조금 흐림 옥영경 2010-08-30 1076
2395 2010. 8.17.불날. 갬 옥영경 2010-08-30 966
2394 2010. 8.16.달날. 이어지는 국지성 호우 옥영경 2010-08-30 947
2393 2010. 8.15.해날. 재난 경보, 국지성 호우 옥영경 2010-08-30 966
2392 2010. 8.14.흙날. 오후 소나기 옥영경 2010-08-26 1051
2391 140 계자 갈무리글 옥영경 2010-08-26 1328
2390 140 계자 닫는 날, 2010. 8.13.쇠날. 오후 한가운데 소나기 옥영경 2010-08-26 1413
2389 140 계자 닷샛날, 2010. 8.12.나무날. 갬 / 산오름 옥영경 2010-08-26 1132
» 140 계자 나흗날, 2010. 8.11.물날. 오후 갬 옥영경 2010-08-22 1042
2387 140 계자 사흗날, 2010. 8.10.불날. 이른 새벽 큰비를 시작으로 종일 비 옥영경 2010-08-22 127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