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29.해날. 비

조회 수 952 추천 수 0 2010.09.13 15:18:00

2010. 8.29.해날. 비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한 주나 지났습니다.
이맘 때면 더위는 한풀 꺾이고
자라던 풀도 돌아간다 하였지요.
따갑게 꽂히던 여름볕과 달리
처서를 지난 두툼한 가을볕은 벼의 이삭이 패게 한다 했습니다.
하여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 했지요.
헌데 이를 어쩝니까,
계속 비 내립니다.
처서비에 ‘십리에 천석 감한다.’ 했고,
‘처서에 비가 오면 독 안에 든 쌀이 줄어든다.’ 했습니다.
나락이 입을 벌려 꽃을 올리고 나불거려야 하는데,
빗물이 들어가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썩을 밖에요.

논을 돌아봅니다.
올해는 이곳저곳 얻어다가 심었던 벼인지라
자라는 게 다 다르다고는 하나
더딘 쪽들이 자꾸 걱정입니다.
그래도 용케 알타리무 싹이 올라옵니다.
퍼붓는 빗속에서 녹아내리지 않고 무사히 올라옵니다.
지난 주 불날 로터리를 치고 놓았던 씨앗들이지요.
물날에 놓은 포트의 가을배추도 싹이 텄습니다.
놀라운 힘들입니다.

홀로 서울 갔던 아이가 돌아왔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편에 보니 웃골 할머니 짐을 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커피집 할머니라 부르는 댁이지요.
읍내 장에 갔다 오시는 길이랍니다.
아이랑 산책삼아 댁까지 모셔다 드리는데,
다리가 아파 몇 차례를 쉬어가며 언덕을 오르셨더랬지요.
"고마와서..."
현관 앞에 굳이 세워두시더니
잘 키우신 가지 댓 개와 사탕이며 음료며 한아름 나눠주셨습니다.
그 마음결이 더 고마웁지요.

논가에서 조병우 할아버지네 할머니를 만납니다.
"우리 아저씨가 아파서 통 약을 못 쳐서..."
대해리서 젤 건장하신 분이다 싶은데,
그 할아버지도 농사가 힘에 부친 나이에 이르셨습니다.
"아아들 가는 거 보러 나왔지. 보은에서 저들끼리 벌초하고..."
"그러면 여기는 어떻게 오셨데?"
선친이 탄광 일하러 오셨다가 눌러앉으셨다지요.
일제 때만 해도 탄광이 활발했던 이곳입니다.
그렇게 역사적 사실 하나를 또 확인하게 되지요.
어르신들과 만나는 일은 그런 거랍니다.

학교 마당 한켠 아이들 보라고
소사아저씨가 순을 내고 키운 포도나무들을 한 줄 늘어서있습니다.
여름날 아이들 눈을 오래 붙들기도 했더랬지요.
이 여름 끝, 오며 가며 잘 익은 것들을 따서 먹으며
마음 참 풍성도 했더랍니다.
오늘 드디어 그 포도를 땄습니다.
기적이 거기 있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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