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 3.물날. 맑음 / 가을 단식 사흘째

조회 수 1034 추천 수 0 2010.11.16 17:30:00

2010.11. 3.물날. 맑음 / 가을 단식 사흘째


가을 단식 이레 가운데 사흘째입니다.
뒤통수냉각법으로 아침을 열며 아침 수행을 하였습니다.

햅쌀로 지난 한해 이곳을 살폈던 몇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 것 하나도 귀할 게 없는 분들이실 것이나
마음을 자루에 담아드리는 것이지요.
산골의 11월, 곳간에 곡식도 쌓였고,
광에 연탄도 쟁였고,
이제 김장만 남았네요.
올해는 날마다 다녀간 고라니로 배추가 도통 남질 않았습니다.
그나마 간장집 남새밭의 50여 포기가 살기는 하였으나
김장용으로 쓰기엔 턱없이 둥치가 작습니다.
함께 유기농을 짓는 이웃도
올해는 사서 먹어야할 형편이라던가요.
멀리 있는 이들과 우리 농사거리랑 바꾸어먹거나,
남도의 집안 어르신들 쪽은 어떤가 이리저리 알아보아야겠습니다.

영어수업을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만나니 재미가 납니다.
할 준비가 된 이들을 만나는 일은 가르치는 이에게 큰 행운이지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얄지 모르겠다던 이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방향과 방법을 찾아 좋다 합니다.
가르치는 이에게 더한 기쁨이지요.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유쾌하지만
젊은 대학생들을 만나는 것도 그에 못잖은 즐거움인 요즘입니다.

수확을 끝내고 나니 멀리서 농사짓는 이들의 안부가 이어집니다.
정신없이 흙 파고 살다 이 맘 때들 소식들을 주고받지요.
비 많았던 올 농사 이야기도 나누고
지난 한해 살아낸 시간도 나눕니다.
곧들 만날 테지요.
눈에 묻혀 오도가도 못하고 불가에서 두런거리는 날도 있을 겝니다.
오늘은 정읍의 서길문샘과 김미경샘이 전화 주셨습니다.
온돌방 하나 놓았다며 그 방에서 등지지자 하셨지요.
어디 하늘만 고마울라구요.
사람이 또한 고맙다마다요.

단식 때는 성찰하기 좋은 책을 꺼내놓습니다.
오늘은 지난 주 식구들이 함께 본 영화의 원작이 된,
아이가 글을 써서 받은 상품권을 식구들을 위해 내놓은 것으로 산
책을 좀 들춰보았지요.

“...다시 선택하라.
새로운 현실을 불러오라.
새로운 생각을 하고, 새로운 말을 하고, 새로운 행동을 하라.
이것을 장대하게 해내라.
... 무언가를 하고 있고 하고 있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알아차려라.
하고 있을 때도 '그러함을 알아차리고'
하지 않을 때도 '그러함을 알아차려라.'
... 해답은 언제나 그곳, 현재에 이미 있다.
네가 그 해답을 가장 잘 들여다볼 수 있을 때는
아이러니하게도 찾을 때가 아니라 놓아버렸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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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3.물날. 매우 추움. <단식 3일째>


단식 셋째 날(몸무게: 58.5kg)
오늘은 단식 3일째이다. 단식은 사흘째가 제일 힘들고 어렵다고 했는데, 그럭저럭 매우 잘 버텨낸 듯하다.
아침에 5년 만에 처음으로 바지에 설사가 나와서 팬티와 바지를 벗고, 엉덩이를 씻은 다음 수건을 둘둘 말아서 그대로 장판이 있는 방에서 잤다. 그래도 조금 자니까 오전에는 배고픔이 사라진 듯했다.
그러나 점심시간(점심시간이 없긴 하지만)이후에 문제집을 풀기 시작했는데, 먼저 푼 국어문제집에서 무슨 문제와 해결의 짜임에 글에 편식의 문제 어쩌고 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치킨과 피자를 너무 먹는다는 얘기가 나오자 다시 음식 생각이 났다. 거기다가 사회 문제집에서는 우리나라의 알릴 음식-불고기라는 주제가 나와서 홍보하는 얘기가 나와서 더욱더 나를 서글프게 하였다. 평소에 한 번도 안 나오던 음식 이야기가 왜 단식기간에 나오는지…….
이 사람들이 나를 놀리려고 다 짜고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더, 국어에서 6학년을 졸업하니 어떤지 말하고 6년 동안의 추억을 쓰라는 문제에서 나는 하필 내가 학교를 한 달 갔을 때 발표회에서 먹었던 치킨 볼이 생각났다. 아, 그 쫄깃함…….
조금 있다가 4시쯤에 신문을 보고 있는데 우리 목수샘이 와서 라면을 끓여 먹는 것이었다! 와, 그 라면에 밥을 말아먹는 매운 자극적인 맛……. 더군다나 평소에 잘 안 먹으니 너무나 그리웠다. 단식 끝나고 회복식도 끝나면 꼭 라면을 끓여 먹을 것이다.
저녁에는 엄마가 식구들을 위해 부침개를 부치는데 너무나 향이 좋았다. 엄마는 단식을 하면서도 함께 사는 식구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맛도 안본다. 그런데 간이 맞다고 한다. 그동안 식구들이 다 단식할 때도 엄마는 내 밥을 챙겨주셨는데, 정말 힘들었을 것 같다. 어떻게 음식을 하면서, 그 냄새를 맡고도 배가 고픈데 참을 수가 있을까? 아, 빨리 회복식을 하고 음식을 먹어야겠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사흘을 참았는데 못할 것이 뭐가 있나, 이제 단식도 끝냈는데…….

(열세 살,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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