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10.나무날. 맑음

조회 수 915 추천 수 0 2011.03.28 14:28:49

 

바람 많았습니다.

겨울바람은 겨울이니 하며 어깨 힘주고 맞서게 하는데

봄바람은 마치 마음을 헤집어놓는 바람만 같아

스산하기 더할 때가 많습니다.

 

어제 천안의 한 대학을 다녀오며

그예 안성의 칠장사를 들어갔다 왔더랬습니다.

선배한테 간곡히 부탁해서 운전대를 잡혔더랬지요.

사천왕을 공부하는 스님 한분이 언젠가 그러셨습니다,

사천왕 가운데 가장 슬픈 표정이 바로 칠장사에 있다고.

최근 홍명희의 <임꺽정>을 다시 읽기도 한 까닭이었습니다.

슬픈 사천왕,

아마도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떠올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어둑해진 절마당만 서성이다 돌아왔지요.

다른 날을 기약했습니다.

 

읍내를 들렀다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겠는 곳곳 터진 공사에

아이더러 주인 노릇 잘하라 맡겨두고 어제 오늘 비웠더랬답니다.

학기마다 주에 두어 차례 읍내를 나가던 아이,

이번학기 시작하고 지난 불날부터 나가려던 것을

그날도 오늘도 학교 일에 묶어두고 어미는 밖을 돈 것이지요.

아이는 공사일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8~9일. 달골 창고동 샤워실 바닥을 뜯기 시작했다. 그 다음 터진 파이프를 때우는데, 하나를 때우면 다른 곳에서 물이 새고 또 그걸 때우면 다른 곳에서 또 새는 식으로 다섯 군데가 터져 있었다. 결국 파이프를 새로 묻기로 했다. 사택 보일러는 완전 망가져 중고로 바꿨는데, 우리는 그 헌 보일러도 5만 원이나 하는 걸 모르고 그냥 고물상에 넘겼다, 치워주는 것만 고마워하며. 5만 원이면 어머니 아버지한테 받는 내 두 달 용돈인데.

다음 날, 드디어 굴착기로 배관 자리를 파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저씨가 실수로 전기선과 통신선을 건드려서 자칫 파손이 심하면 완전히 다시 선을 놔야 할 판이었다. 다행히도 손상이 경미해서 대충 때울 수 있게 됐다. 전문가들도 실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류옥하다)

 

오늘은 제(아이) 볼일도 못보고 기다렸다는데,

아저씨가 오지 않으셨더랍니다.

괜히 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가파른 달골만 몇 차례 오르내렸더라나요.

 

사는 일이 멀고 험하기 여러 날,

요새는 이 구절 하나를 끼고 힘을 내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세상살이 견디기 쉬운 것이었다면, 부처님은 무엇 하러 왕국을 버리고 얼음 골짜기에서 뼈를 깎었으리. 오죽하면 인생은 고해라하지 않던가. 사람마다 남 보기는 호강스러워도 저 혼자 앉어 있을 때의 근심 고초란 짐작도 못하는 법. 어떻게든지 그것을 이겨내고 버티면서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그저 타고난 본능만은 아니지. 그것은 일이다. 일이고말고. 살아도 그만 안 살아도 그만일 수는 없지. 뜻한 것이 이루어지고 재미있고 좋아서만 사는 것이랴. 고비고비 이렇게 산 넘고 물 건너며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곧 사는 것이다.’

그저 ‘지극하게’ 살아갈 일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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