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13.해날. 흐려지는 저녁

조회 수 1042 추천 수 0 2011.03.28 14:41:13

 

비 온다더니 내리는 어둠과 함께 흐려지고 있습니다.

 

공사를 시작하고 이레째,

날마다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날은 그리 흘렀습니다.

오늘은 창고동 부엌과 욕실 수도파이프 묻는 일을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은 밖으로 나와 파놓은 파이프 묻기.

소사아저씨와 아이도 달골 올라갔지요.

치우고 쌓아놓았던 보도블록을 다시 깔았습니다.

“기울어졌는데요.”

“야, 너는 왜 그렇게 까다롭게 묻냐?”

어미 대신 주인노릇을 하자니 그럴 테지요.

 

그런데, 점심을 먹고 오후 일을 하러 올라간 사람들이

답체 소식이 없습니다.

어둑해지는데 사람들이 올 생각을 않는 거지요.

전화를 넣습니다.

7시가 넘어가는데 마저 하고 온답니다.

“아저씨가 뭘 빼먹고 묻어서...”

그래서 메웠던 땅을 다시 뒤집었다 묻었다지요.

그런데 일이란 게 기계가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삽질도 그렇지요.

아이도 종일 삽질을 도왔더랍니다.

공사일지에 이리 쓰고 있었습니다.

‘(생략)원래대로 보도블록을 까는데 아저씨가 한 쪽은 높게 한 쪽은 낮게 하셨다. 너무 대충 하신 것 아니냐고 따지니, 물이 빠지라고 일부러 그런 거란다. 오후 내내 나도 삽질을 했다. 땅을 곧게 파기도 하고 굴착기가 할 수 없는 자잘한 흙일을 했다. 삽질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막노동하는 이들이 그것으로 밥을 버는데, 그 처지가 헤아려진다.

(생략)아저씨는 물을 뺄 수 있는 맨홀을 하나 만들어 주셨다. 이러면 겨울에 쓰지 않을 때 아예 물을 빼서 파이프가 터지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이 집을 지을 때 공사한 사람들이 진작 이렇게 맨홀을 만들었다면 터지지 않았을 텐데. 업자들이 내 집 같이 조금만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하기야 집은 살면서 고쳐가는 것이라고 한다. 안 살아봤으니 몰랐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전문가라면 그런 것도 최대한 짐작하려 애써야 하지 않을까.’(류옥하다)

 

미국인 벗 케라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본인 친구 스미코에게 전화가 안 되는데 걱정이랍니다.

쓰나미가 덮친 일본 재앙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지요.

스미코, 가까운 곳의 대학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수입니다.

2005학년도에 이 산골까지 들어와

주에 한 차례 물꼬 아이들을 가르쳐주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가족이며 친구들이 그 지역에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가 얼마나 걱정의 날들을 보내고 있으려나,

케라가 전화라도 넣겠다고 연락을 취하고 있는 중이었던 거지요.

먼저 챙길 마음 내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스미코에게 전화가 닿았습니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무사하다 합니다.

가끔 주위 사람들을 두루 챙기는 케라에게 놀랍니다.

그리고 반성합니다.

아, 내가 참 사람 생각 않는구나,

사람 노릇 참 못하고 사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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