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29.불날. 맑음

조회 수 1040 추천 수 0 2011.04.13 17:19:23

 

본관 앞에는 작은 연못이 둘 있습니다.

거기 부레옥잠이며 연이며 수련, 마름, 그리고 물상추 둥둥거리고

온갖 것들 물 위를 겅중거리기도 하지요.

겨우내 비웠던 그곳도 봄날을 준비합니다.

소사아저씨가 청소를 하고 비닐을 깔고 물을 채웠습니다.

돌아오는 계절마다 계절맞이를 하며 한해를 보내고

다시 또 한해를 더하고,

그렇게 우리 삶의 끝 날에 이를 테지요.

그저 살 일입니다...

흙집 벽체에 샜던 수도를 고치기 위해

나무보일러실 안을 채웠던 자갈과 모래를 죄 긁어냈더랬지요.

수도공사도 끝났으니 정리를 해야지 해야지 하다

오늘 그곳도 채웠습니다.

 

농업교육을 마치고 학산의 박병일샘 농원에 들립니다.

근래엔 꼬냑도 만드시지요.

포도밭하우스에 드니 그 아래 블루베리도 자라고 감자도 자라고

그리고 열무도 한껏 자랐습니다.

당장 뽑아가라며 한 아름 안겨주셨지요.

즙을 짜고 술을 만드는 곳을 들여다보고,

거실에 들어가 차도 마셨습니다.

이번 학기 물꼬의 지역 어르신 초청특강도 부탁드렸지요.

돌아오는 걸음에 포도즙과 두 가지 종류의 와인,

그리고 꼬냑을 실어주셨네요.

나오기 직전엔 닭장에 들어가시더니

막 낳은 굵은 달걀을 예닐곱 개나 꺼내오셨습니다.

된장 고추장도 맛보라 조금 나눠주셨지요.

얼마나 많은 손발을 통해 우리 삶이 이어지는지요...

 

저녁, 예정에 없이 명상모임 하나 갔습니다.

“공부하지 마라, 이미 깨달았으므로.”

“그러면 뭐해요?”

“그저 고요하라.”

그런 곳이었지요.

한 시간여 다른 안내 없이

그저 깊이 앉았다 왔습니다.

시끄러웠던 속이더니

누군가 어깨를 가만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듯하였습니다.

아, 너무 오래 수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번 학기 시작이 늦어지니 더욱 그러하였네요.

 

생평모임.

이영현님과 최아선님은 유기농포도밭을 1천평 더 늘렸고,

김종근님은 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늘 사람의 문제, 관계의 문제더라,

공무원공금횡령이 있었고 그래서 시작된 오랜 감사기간을 거치며

단순한 삶에 대한 생각이 더욱 커지고

그러면서 직장을 그만 다닐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손석구님 역시 곳곳의 농법 고수들을 만나며

농사에 대한 여러 실험들을 해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석구님이 애니어그램 개괄로 발제를 했네요.

드디어 속을 끓였던 일을 사람들 앞에서 꺼냈습니다.

왜 12월 모임에서 어깨를 꼼짝 못했던가,

어떤 문제가 있었던가,

지금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다들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문제가 없는 삶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그 문제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접근하는가,

나아가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중요할 테지요.

문제는 하나도 덜어지지 않았으나

깊은 이해와 사랑 속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찌 어찌 되려니, 지난 몇 달 날서왔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기도 하였네요.

흉흉한 세상에도 여전히 세상이 건재한 것은 인류가 지녀왔던,

타인을 이해하고 안으려고 애써온

아름다운 품성들 덕이었지 않았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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