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13.쇠날. 화창

조회 수 1034 추천 수 0 2011.05.25 10:20:16

 

 

오전에 연탄을 들였습니다, 1,000장.

먹는 일 사는 일에 대한 익힘,

이동학교의 큰 목표 하나일 테지요.

어떻게 먹는가, 어떻게 난방을 하는가,

삶에 얼마나 중요한 일이던가요.

따뜻한 방이 내게 이르기까지,

밥 한 술이 내 입에 이르기까지 거쳐 온 손발들을 헤아리고 싶었습니다.

하여 가을에 들일 연탄 가운데 일부를 오늘 들이자 한 것이지요.

먹는 것도 그렇습니다.

서울에서 살 적엔 한 끼가 때워야 하는 끼니이더니

이 산골 와서는 다릅디다.

처음엔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점심 먹고 돌아서면 저녁,

밥만 하다 해가 지는가 싶더니 그 시간이 지난 뒤엔

먹고 사는 일의 엄중함 앞에 숙연해지기까지 하였지요.

사는 일에 무에 그리 중뿔날 것이 있겠는가,

도대체 이적지 내 한 몸 살리는 일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던가 반성하며

먹고 사는 일의 가치를 새로이 보게 되었더라지요.

 

연탄은 이곳에서 쓰이는 여러 난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전기, 가스, 기름, 나무, 그리고 연탄을 쓰지요.

가마솥방과 책방과 교무실의 난로에,

그리고 된장집과 고추장집 아궁이가 연탄을 씁니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연탄트럭이 서고,

가파란 계단과 연탄광까지 나래비로 서서 연탄을 날랐지요,

얼굴에 숯 묻혀가며.

“참 드시고 하세요!”

우리 아이들이 좀 쉽잖아요(?).

그렇게 고된 일을 하고도

새참으로 포도효소와 물과 어제 밤낚시를 갔다가 남겨온 과자류를 내놓으니

힘듦이 다 가셨더랍니다.

연탄배달아저씨도 아이들이 기특하다며

당신이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싶다고 돈을 내주셨지요.

읍내 나가는 날 사다 주마 하였습니다.

함께 하는 일 중요하지요, 그것이 힘이 든다면 더욱.

주고 받는 연탄 속에서 우정을 느꼈음은

꼭 하은이의 표현만은 아닐 겝니다.

아저씨 돌아가시던 걸음 뒤로 아이들이 크게 인사를 건넸는데,

맨 앞에 섰던 다운이한테 지폐 한 장을 건네기도 하셨습니다.

어른의 마음이란 다 그런 거지요,

흔히 뺀질뺀질한 요새 애들이 아니었으니

일한 이 아이들이 얼마나 이쁠 것인가요.

 

‘오늘은 연탄을 날랐다. 연탄을 나르며 느낀 건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확실히 우리가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는다는 것이다. 처음엔 다닥다닥 붙어서 나르더니 나중에는 연탄을 하늘로 던지기도 했다.

둘은 나이가 들수록 연탄 나를 때 밑으로 내려온다는 법칙을 발견한 거다. 4~5학년 때는 맨 위에서 하고, 6학년 때는 중간에서 하더니, 이번에는 밑에서 했다. 내가 차츰 커가는 게 기쁘다.(* 트럭에서 가파란 계단을 지나 평지로 가서 창고로 이어짐)

셋은 일에 재미를 가지자는 거다.

힘들고 재밌는 게 반반인 연탄 나르기였다.’(류옥하다의 날적이에서)

 

자장을 원 없이 먹게 되었습니다.

아침 밥상을 아이들과 준비하던 현정샘의 무한한 마음이지요, 하하.

하다 보니 짜서 물을 부어도 부어도 짜더라나요.

영양사가 음식을 하는 건 아닐 겝니다.

그래도 부엌에 있는 사람도 그렇게 하더라는 사실은

부엌일이 그리 익지는 않은 희진샘한테 용기를 줄만도 하였다나요.

 

오후엔 풍물. 7채가 끝났습니다.

‘7채를 칠 때 심장이 아주 빨리 뛰었다. 정말 흥분되는 리듬이었다.’

승기는 날적이에서 그리 쓰고 있었지요.

정말 신명나게들 쳤습니다.

하면 할수록 재미난 게 어디 풍물뿐일까만

뭔가를 열심히 하면 신명도 그리 따라붙지요.

 

현정샘 가시고 그 자리로 권희중(물꼬 희중샘은 윤씨)샘이

점심버스로 들어오셨습니다.

준환샘도 며칠의 휴가를 떠났지요.

달날 저녁 들어오기로 합니다.

 

밤, 아이들의 회의를 보고

권희중샘이 한 표 행사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회의의 질에 대한 문제제기였던 거지요.

그냥 절차에 집중해서만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이유도 없이 ‘그냥 하죠’ 이런 거, 회의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다형이와 준이 한소리를 듣기도 했고,

진행을 맡았던 김유가 회의로 아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하는 경고가

외려 흐름을 끊는 건 아니냐 짚었습니다.

이 학년이 타 학년에 견주어 회의를 잘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별로 다르지 않다고도 덧붙였지요.

그래요, 절차를 잘 알고 있고 그 방식을 잘 따르나 기계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말은 잘합니다.

그런데 말을 잘할 ‘뿐’이라는 느낌을 주고도 있습니다.

핵심을 놓치고 주제를 자주 벗어납니다.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하자! 즐겁게 하자!”

소득 없는 이야기, 영양가 없는 이야기 그만하고

저질회의(과격한 표현입니다만)를 혁신하자, 그런 자리였네요.

“여러분이 서울로 돌아왔을 때

적어도 회의는 지긋지긋한 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오진 않기를 바랍니다.”

민주적 절차에 대해 학습한 초등시기였다면

이제 중학생으로서 우리가 뭘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사고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음...

한 아이가 흠씬 멍이 들었습니다.

얼굴에 난 멍, 연탄자국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멍이었습니다, 며칠 된 흔적입니다.

몸을 살핍니다, 팔에 세 군데 큰 멍이 들었습니다.

다른 곳도 살핍니다, 팔다리 십여 군데 퍼렇게 멍입니다.

아, 이틀 동안 아이는 아침을 먹지 않았고,

어제도 아프다고 잠시 누웠고, 오늘도 누워 잠깐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아, 그래서 힘이 들었던 거구나...

지난 10일 밤에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한 아이와 집단 간의 갈등이 오래 있어왔고

급기야 극에 달한 감정은 주먹질을 불렀습니다.

멍이 아니었으면 지나갔을 겝니다.

노래집니다.

지금 이곳에 교사가 몇인데,

그날도 어른들이 몇이나 있었는데,

몰랐던 겁니다.

자책이 입니다.

 

풍물시간 뒤, 남자아이들 한 명 한 명 면담에 들어갔습니다.

(주먹질을 한 둘의 몸도 살펴봅니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가를 밝혔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 속에 너는 무엇을 했는가,

그리고 어떻게 해결했으면 좋겠는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짐작한 대로 싸움을 단순히 통과의례로 볼 수 없는 점들이 있었습니다.

싸운 두 아이의 갈등이 문제가 아니었지요.

한 아이를 앞세운 다수의 아이와 한 아이의 싸움이었습니다.

잘 불거진 셈입니다, 이렇게 나머지 날들을 살 수는 없는 일이니까.

진단해야 했습니다.

당사자, 방관의 얼굴을 하고 부추긴 자, 방관자들이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힘이 약한 아이에게 폭력이 이월되고 있는 심각성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짚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오래 왕따를 당해왔지요.

왕따는 왕따를 당할 만한 까닭을 지니고는 있습니다.

이 아이를 향한 왕따는 ‘잘난 체’가 까닭이었습니다.

저들(저희들) 말로는 문제해결방식의 차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서로 문제가 생기면 문제의 왕따 아이는,

서로 힘의 균형이 팽팽하니 교사를 통해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받자는 식이고,

다른 아이들은 그건 고자질이며 자신들은 묻어두길 원해왔노라 했습니다.

그밖에 자신들과 코드가 맞지 않다는 게 주 이유였습니다.

왕따를 당한 아이가 그리 매력적인 아이는 아닌 건 맞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폭력을 행사한 것도 아니고 도덕적 문제도 아닌데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까닭으로 ‘싫어’하는 감정이 그렇게 정당해도 되는 걸까요?

생태가 별것이겠는지요.

내 맘에 드는 놈하고만 사이좋은 거 누가 못하겠는지요.

우리는 어떤 놈하고든 결국 같이 살아가야 합니다.

어쩌면 그게 생태의 핵심 아닐까 싶기까지 합니다.

좋은 주제가 생겼습니다.

왕따를 당한 아이의 주장을 들어봅니다.

아이들과 놀고 싶어 하는 제(자기)마음을 이용했다,

결국 싸운 두 아이가 다 그런 마음이고,

욱하는 한 아이의 성미를 이용해 결국 집단의 뜻을 구현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할 것입니다.

사람살이 무슨 문제인들 없을까요, 싸움인들 왜 없겠는지요.

문제는 말입니다, 드러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입니다.

담임교사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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