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16.흙날. 오후 퍼붓는 비

조회 수 1042 추천 수 0 2011.08.01 16:26:38

 

가마솥방에서 설거지를 하다 고개를 들면

마당 건너 아주 커다란 백합나무 한그루 있습니다,

때로 바람은 거기서 시작 되고

가을도 거기로부터 온다 싶은.

그 가지 끝에는 늘 하늘이 걸려있고,

어쩌면 저 하늘을 한 조각 씩 떼먹으며 내 생이 굴러간다 싶지요.

그거 먹고 또 하루를 삽니다.

 

아이가 대전의 치과에 가는 길에

천을 좀 구해오자 하고 원단시장을 갔더랬습니다,

앞치마도 좀 만들어야겠고.

그런데 후미진 곳에서 한 공간을 발견했습니다,

인도 같은.

인도에서 잠시 머물던 젊은 때가 있었습니다.

다시 오겠노라 하고 떠나온 그곳에

이십년도 더 흘렀으나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밖에는 우기처럼 비 쏟아지고 있었고,

비를 피한 그곳에 왁자한 인도가 있었던 게지요.

맘 좋았습니다.

잊지 않고 있으면 그리 만난다는 말 생각했습니다.

그대의 꿈도 그리 잊히지 않기를.

 

사람이 하는 일이 좋은 마음을 썼어도 그게 꼭 좋은 결과를 내놓지는 않지요.

작년 이맘 때 몸과 마음을 좋은 일에 쓰리라 작정한 일 하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흐르지 않았고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이 결과적으로는 여럿을 불편하게 하고 말았지요,

그 일에 연관되어 있던 이들과도 소원해지고.

하지만 마음은 그 시간에 자주 가 있던 한해였습니다.

오늘 그 일에 얽혀있던 이가 연락을 해왔습니다.

여름과 겨울 한 차례를 이곳에서 보내던 그니,

올 여름도 여기 오겠노란 연락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 대신 그 일을 수행했던 이인데,

묵직한 그니, 변하지 않은 그 한결같음으로 반가이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고맙고, 기뻤습니다.

 

흙날 오전은 먼지풀풀이지요.

두 사람은 달골을 청소하고 내려오고,

아래 학교서는 또 다른 두 사람이 본관을 청소했습니다.

철우샘은 장순이와 쫄랑이 산책도 시켜주었지요. 한 녀석을 데리고는 돌고개로,

또 다른 녀석을 데리고는 대해골짝 들머리로 나갔다 왔습니다.

 

틈틈이 이불 빨래도 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손 하나가 귀한 이곳이지요.

여름날은 더합니다.

하기야 어느 때라고 그렇지 않을까요.

무식한 울 어머니,

나무 하나만 들어주어도 그가 있어 도움임을 잊지마라셨습니다.

그런데 이눔의 인간 존재는 어찌 하여 서운한 것으로 그 고마움들을 가린단 말인가요.

고마움만 잊지 않아도 관계가 틀어질 게 없더라던

벗의 말도 곱씹어졌네요.

 

오늘 아이랑 인간이 가진 열정과 욕망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흔히 생태적으로 산다느니 의식 있게 산다는 것이

마치 열정과 욕망을 누르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요.

그런데 그렇게 누르는 것이 우리를 정말 행복한 삶으로 끌고 가는가,

인간의 열정과 욕망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것이더냐,

그것이 인간을 진보케 하기도 했지 않느냐,

그렇다면 정말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다고 느끼게 할 수 있는가...

삶에 자족했던 이들의 특징은 결국

돈독한 관계가 있었고, 천착한 자신의 일이 있었으며,

애정이 가고 잘할 수 있는 것들을 연마했고,

그리고 의미 있는, 가치 있는 목적의식이 있었다,

우리들의 결론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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