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20.물날. 내리 폭염

조회 수 1226 추천 수 0 2011.08.01 16:33:03

 

“학교에 왔는데 아무도 안 계시는 것 같네요...”

“누구실까요?”

재홍샘이었습니다.

조만간 찾아뵙겠다던 게 엊그제였는데,

그 조만간이 서로 달랐던 게지요, 하하.

승현샘과 함께 대학 때 동아리에서 두어 차례 품앗이로 왔던 샘입니다.

늦은 졸업을 하고 취직시험을 준비하며 바쁘다

두루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매진하고프다 했지요

품앗이가 달래 품앗이인가요,

그렇게 서로 주고받는 거다마다요.

그들로 꾸려왔던 지난 시간들입니다.

늘 거기 있는 물꼬로 언제든 갈 수 있어 좋다,

품앗이들이 그랬으면,

이편에선, 여러분들로 존재했던 물꼬이다, 언제든 오시라,

우리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좋다, 그런 것이지요.

 

남자 어른들이 쫄랑이 목욕을 시킵니다.

부엌뒤란에 받아놓은 물로 철푸덕철푸덕 씻겨댑니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그러는 게 아니다.”

같이 사는 동물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무식한 울 어머니’ 꼭 그러셨습니다.

그러게요,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어찌나 소홀한지,

내 사는 꼴도 수습이 안 되는데, 하며

그 돌봄의 책임을 그리 넘기고는 하였습니다.

하여 오늘 쫄랑이에게 미안함 좀 던 시간 되었더라지요.

 

큰해우소 뒤란을 정리하는 날이었습니다.

언제 또 그리 잡다한 것들이 쌓였더랍니까.

부려놓으면 살림은 어찌 그리도 너저분한지.

상자들이며 별별 것들이 몸을 숨기고 있다

세상 만나 활갯짓하는 마냥 어찌나 널리던지요.

남자 어른들이 손을 더했고,

불도 놓아 태울 것들 태우기도 하였습니다.

 

자주 유서를 쓰는 제자가 있습니다.

힘든 일이 생기면

한동안 어딘가로 훌쩍 떠나 모든 이들로부터 소식을 끊기도 합니다.

만나는 문제들의 끝은 결국 자기 죄로 귀착하고

목숨을 놓으려한 적도 몇 차례 있는 그이지요.

어찌 그리 사는 게 힘이 드는지,

저를 안으로 안으로 얼마나 못 살게 구는지,

안쓰럽기도 하고 어째 저러나 속상하기도 하고

어떻게 좀 도울 수 없을까 고민하기도 하지요.

며칠 전 문자 하나 들어와 몹쓸 짓 했을까 더럭 겁이 나더니

다행히 다시 자기 섬에서 나왔다는 소식입니다.

“목숨으로 죄가 청산되더냐. 택도 없다.”

더구나 윤회가 맞다면

으윽, 다음 생으로 이어질 이 숙제를 어찌 감당하려나요.

언젠가 목숨을 끊으려했던 후배를 향해 선배가 던졌던 말이 생각납니다.

“죽는 게 두려워서 꾸역꾸역 사는 줄 아냐?

누구는 폼나게 죽을 줄 몰라서 꾸역꾸역 사는 줄 아냐고?”

그래요, 죽지 않았으니 할 말 아닐지 모르나,

정말 죽는 게 제대로 사는 것보다 어려울까요?

우리가 나날을 잘 살아나가기,

그것이야말로 죽는 일보다 한참은 더 고단한 일이겠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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