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10.달날. 희붐한 하늘

조회 수 1226 추천 수 0 2011.10.21 00:26:06

 

 

대배 백배와 선정호흡으로 시작하는 하루.

 

장순이가 된장집을 나왔습니다.

얼어 죽을 뻔했던 새끼들을 된장집에서 녹히고

장순이를 불러들여 젖을 물리기 사흘째입니다.

장순이가 사람을 물거나 한 일이 없었으나

마을에서 풀려있는 개를 불안해하여 묶어두기를 부탁,

늘 쇠줄에 묶여있기 수년,

그런데 쇠줄에 자꾸만 새끼들이 치여 아예 풀어놓습니다.

“장순아, 사람 물면 안 되는 거야!”

강조하니 낯선 이가 나타나도 물려들지 않습니다.

신통방통한 진돗개가 정말 맞다 하지요.

나다닐 땐 소사아저씨 곁에 꼭 붙어 다니는 장순이.

 

헌데! 쫄랑이 사고사가 있었습니다.

우리 곁에서 8년 가까이 살았습니다.

누군가 가고 혹은 오고, 그리고 오거나 갑니다.

새끼들이 세상으로 오니 쫄랑이가 떠났습니다.

그의 다음 생은 무엇으로 한 생을 채우려나요...

 

오늘은 상민샘이 돌아갔습니다, 사흘 예정을 넘기고 닷새를 머문 뒤.

작업하는 노트북이며, 난로설치, 장순이의 노산 뒤치다꺼리,

이것저것 살펴주고 떠났습니다.

곧잘 밥상도 챙기던 그이지요.

훌륭한 청년(이라기엔 나이가 좀 많나?)이었답니다.

고맙습니다.

 

오후, 식구들이 고구마를 캤습니다; 닭장 앞 고구마밭.

많고, 굵었다 합니다.

고구마줄기를 엄청 따두었지요.

데치고 벗기는 것도 그만큼 일일 테지요.

“굵은 줄기랑 잎도 따둘까요?”

효소를 담을 거냐 묻는 거지요.

살림을 저보다 더 잘 챙기는 이 곳 남정네들이랍니다.

 

5주 동안 달날마다 서울에 있어야할 일이 생겼습니다.

듣고 싶은 강의 하나 있었는데,

마침 의뢰가 들어온 강의가 역시 같은 주간이어

가라는 말이구나 싶어 갔지요.

10월은 흙날마다 서울에 있을 일이 또 겹쳤는데,

하여 주말마다 서울에 있는 이 달이겠습니다.

 

학교에 돌아오니 미국 아이오와의 가을이 글월에 담겨왔습니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벗 같은 제자(?), 품앗이일꾼입니다.

갈색 나뭇잎 하나도 함초롬히 봉해져 왔지요.

‘물기를 머금고 싱긋 웃음 짓는 봄 새싹들과는 또 다르게

 머리끝부터 바알갛게, 노오랗게 물들이는 가을날의 나뭇잎들은

 “가슴 뿌듯하게” 아름다운 것 같아요.

 샘, 샘은 가을날의 나무를 닮은 것 같아요,

 가슴 뿌듯한 아름다움.

 그곳에 그 모습 그대로 살아가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슴 뿌듯한 아름다움!

그런 찬사를 받을 만하던가요.

‘가지런하게 잘 살아야지, “여기서”.’

별이 쏟아져 내리는 찬 하늘을 올려다보는 밤입니다.

이국에서 건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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