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1.24.나무날. 바람찬 맑음

조회 수 1115 추천 수 0 2011.12.05 02:28:03

 

 

 

큰일입니다,

까지는 아니고 좀 걱정스럽다 그 말이지요.

대배 백배를 시작하고 두어 달,

흐름을 벌써 두 번째 깼답니다.

간밤에 숙소에서 밀린 일들을 하느라 새벽녘에 누웠더니

그만 나갈 시간 다 돼 눈을 뜬 게지요,

바람 거칠어 온갖 가지 짐승들이 창밖에서 울부짖던 지난 밤으로

뒤척이기도 했더니만.

그래도 그냥 나가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할 듯

대배 십배로 백배 삼았다지요, 하하.

뭐, 참, 지 식의 계산법이 교활합니다요.

 

지난 주 서울 와 있을 적

아이한테 문자가 들어왔더랬습니다,

옷 언제 고칠 거냐는.

“새로 옷을 사달란 것도 아니고...”

꿰맬 옷을 몇 벌이나 그리 쌓아놓고 있으니

입을 옷이 아무래도 시원찮은 겁니다.

재봉틀 앞에 앉는 날이 이리저리 여러 날 밀렸던 거지요.

“룽따나 이런 건 실질적인 것도 아닌데...”

얼마 전 챙겨서 전나무 사이에 매달아 펄럭이고 있는 룽따를 들먹였더랬지요.

옷 꿰맬 시간은 왜 없냐는 화를 그리 에둘러하고 있었던 겁니다.

미안했지요.

밤, 그예 재봉질을 했습니다.

찢어진 데가 많아 아주 바지들을 만들었더라니까요.

 

물꼬 옷방에는 우리가 평생 입어도 못다 입을 옷들이 있습니다.

곳곳에서 보내준 멀쩡한 옷들이지요.

하기야 그것도 십 수 년 오는 이들마다 꺼내 입고 나니 낡고,

또, 산골서 유용치 않은 옷들을 빼내고 나니,

이제 그리 표현도 못하겠습니다.

계절이 바뀌면, 봄가을이야 그냥 지나지만,

여름과 겨울, 아이는 그곳에서 성큼성큼 자라는 제 몸에 맞춰

옷을 챙깁니다.

너무 많이 자라버린 아이(뭐 엄밀하게는 좌우로 표면적이 불은),

상자마다 다 꺼내보아도 제 몸이 맞는 게 거의 없던 모양입니다.

날은 춥고, 어둡고, 옷방 구석에서 살짝 눈물 나더랍니다.

“서러웠구나?”

다행히 마지막 상자에서 몇 개를 건졌다데요.

 

숨꼬방은 공연이 있을 땐 출연자들의 대기실로 쓰이고

겨울 계자에는 잠자리 일부로,

여름에는 쉼터로도 쓰이는 공간이었는데,

물꼬 짐도 이러저러 들여놓은 데다

그 위로 여러 해를 물꼬에 머물던 이의 짐이 자리를 차지하고

비워주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오늘 드디어 그 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질기게 기다리면 일은 어떻게든 정리가 되어갑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누가 가느냐, 뭐 그런 걸까요...

 

수행과 일상을 함께 하기!

가끔 선배들이 한 때 열심히 했던 글쓰기를 계속 하라고 부추기면

사는 게 시여요, 대답합니다.

뭐 게으름에 대한 핑계이기도 하지만

아주 그릇된 표현은 또 아니지요.

사는 걸 열심히 하면 그게 시이거니 하니.

수행 역시 사는 일이 수행이도록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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