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 9.쇠날. 눈발

조회 수 1256 추천 수 0 2011.12.20 11:48:53

 

맑게 시작한 하루이더니 오후 눈발 날립니다.

김장 이틀째.

이때의 김장이라 함은 고추장도 이때, 메주도 이때,

여러 밀려둔 부엌일도 이때를 말함입니다.

 

김치국밥으로 아침을 먹습니다.

겨울 아침 최고의 밥상이지요.

외가에 살았던 어린 날,

새벽잠을 깨워 할머니 할아버지는 김치국밥을 멕이셨습니다.

잠이 더 좋았을 그때,

그래도 그 맛에 선잠을 깨고 결국 한 그릇 뚝딱 먹었던 국밥입니다.

그러고 나면 창호지 희부염하게 밝아오던 하늘.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생을 밀고가다마다요.

 

이른 아침부터 교무실 책상에 앉습니다.

결국 흙집 문을 기성문을 조금 고쳐 쓰기로 하였지요.

해서 오늘 디자인을 보고 담당하는 이와 통화하기로 한 것입니다.

색깔이며 결정해야할 몇 가지가 있었지요.

재영샘은, 시영샘 덕에 업체에 공급하는 가격으로 문을 보내기로 합니다.

곳곳에서 도와주는 맘들이 고맙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이런 손은 줄이려 합니다.

진정 자유롭고자 한다면 더욱 홀로서기!

도와주는 편에선 도와줬는데, 하는 마음이 남기 쉽고

도움을 청한 쪽에선 미안함으로 빚이 남기 쉽겠기에.

그래도 우리가 된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도운 건 잊고 누군가로부터 받은 건 잊지 않고 갚을 것.

아무리 살아도 결코 따를 수 없는 ‘무식한 울어머니’ 계산법이 그러하지요.

 

배추를 뒤집습니다.

날은 찬데 일하기는 푹합니다.

하늘 고맙습니다.

사과잼도 하지요.

광평에서 왔던 사과가 냉장고에 한 광주리 있었습니다.

해버리지요.

간장집 부엌 아궁이 뭉근한 불 위에서는 식혜를 끓입니다.

삭히고 고와서 고추장에 넣을 것이지요.

“아, 불 빼야겠다.”

모든 건 다 때가 있지요,

식혜는 때를 놓치면 그만 쉬어버립니다.

밥알 몇 알 둥둥 떨 때 멈춰야 합니다.

 

배추 속 버무릴 고춧가루에 섞을 다싯물을 위해

한 포대의 다시멸치 똥도 가립니다,

오래 끓이면 쓰니.

그리고, 어제 굵은 소금 뿌려두었던 동치미에 국물 붓고

느지막한 오후 식구들이 읍내 나갔다 오지요.

갈 때도 올 때도 눈발 날렸네요.

할머니 혹여 몸살하실까 하여,

덕분에 온 식구들 목욕탕 구경도 하고,

남아있던 고추도 마저 빻아 왔지요.

 

어둑해지는 산골 저녁, 배추를 씻어 건집니다.

만 하루 절이고 만 하루 건지기,

이정도의 날씨엔 이래야 됩디다.

이 구성원으로 몇 해 했더니 일이 척척입니다.

이런 일은 정말 같이 해야 힘 덜 들지요,

곁에 섰기만 해도.

 

그 사이 전화 열심히 울립니다.

며칠 메일 답글이 없다 걱정하기도 하고,

선배네 가족여행에 여기 아이도 데려갈까 사정 살펴주는 연락,

여기 손 너무 빤하니 몇이 일찍 들어와 계자준비위를 꾸려보자는 제안까지

아, 모두 고맙습니다.

나눔, 그들로부터 배우는 마음입니다.

주며 티내지 않고,

설혹 받는 마음이 주는 마음을 헤아리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

그런 마음들을 그네에게서 배웁니다.

 

한 밤 일어나 불을 더 땝니다.

날이 차긴 찬가 봅니다.

웬만하면 자도 되겠으나 아무래도 노인네가 걸리지요.

뜨뜻한 아랫목이어야 몸도 가뿐하리라 하고.

‘무식한 울어머니’도 이제 늙었습니다. 나이 일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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