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계자 이튿날, 2012. 1. 2.달날. 해

조회 수 1067 추천 수 0 2012.01.05 19:29:32

 

 

다른 날보다 더한 추위일 거라 하였으나

바람 없어 얼마나 다행인 아침이던지요.

 

샘들 해건지기.

요새 물꼬에서 아침수행으로 하고 있는 대배 백배와 선정호흡.

특정 종교를 향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 종교의 하늘님을 놓고 절하기.

‘아침부터 일어나서 절을 했는데 개운했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새끼일꾼 민재형님은 그리 쓰고 있었지요.

아이들의 아침, 아이들과 함께 보낼 하루를 맞는 준비랍니다.

 

그리고 아이들 해건지기.

첫째마당은 몸을 위해, 둘째마당은 마음을 위해

몇 가지 동작과 명상을 하지요.

밖은 눈 위로 햇살 퍼지고 있었지요.

 

손풀기.

또 하나의 명상이고, 예술활동을 하는 시간입니다.

말 없이 아이들은 한 사물을 놓고

그것이 내 눈에 보여지는 대로 스케치북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몸을 벽으로 하여 펼쳐보이기 했지요.

다음 숙제가 나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중심 사물 그것만 그려보기, 크게 그려보기, 가운데 그려보기...

 

들불.

들에 나가 불을 피우지요.

곳곳에서 뭔가를 굽는 연기 오르고

아이들은 논두렁이며 논에 쌓인 눈 속에 뒹굴다

추우면, 혹은 출출해지면 불가로 나타납니다.

바로 그 풍경!

그러나 눈이 너무 두텁습니다.

가마솥방에 판을 벌여 어른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앉으면

그것에 관심 있는 아이들이 모여들지요,

마치 아궁이 앞처럼.

눈밭을 휘젓던 아이들은 틈틈이 들어와 먹습니다;

은행, 떡꼬치, 인절미, 썬 고구마, 아, 그리고 달고나!

난로에 밤 익어가고...

“쑥떡과 인절미를 좋아한다 하니...”

쑥인절미는 희정에게 맡깁니다.

아이들은 각각 저 좋아하는 것부터, 혹은 구경삼아

가마솥방을 흘러다녔더랍니다.

‘달고나를 만들었는데 처음에는 망쳤다가 갈수록 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새끼일꾼 민재)

‘고구마를 잘 익게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이런 일에 익숙지 않아 지레 겁을 단단히 먹었기 때문일 거다. 물로도 익힐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새끼일꾼 해인)

‘너무 어수선할 줄 알았는데 진짜 재밌고 평화로웠다.’(새끼일꾼 경이)

이번 계자는 새끼일꾼들이 다 움직이는 것만 같다지요.

 

낮밥을 먹고 임시한데모임이 있었습니다.

‘열린교실’이 있는 시간인데,

이토록 쌓인 눈을 두고 어이 할거나,

시간을 어찌 쓰면 좋겠는가 발의했지요.

우리는 열린교실을 다른 날로 밀기로 합니다.

그리고 눈싸움하러 나갔답니다.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기가 어디 아이들만일까요?

‘(오늘의) 가장 큰 일은 눈싸움이 아닐까 한다. 눈싸움으로 인해서 사소한 다툼이 있기도 했고, 일정이 변화하기도 하였다. 이런 캠프에서 일정의 변화가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아무렇지 않게, 변하는 것이 마치 아무 일 없는 듯이 일어난다는 것이 새로웠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이 오늘 하루로 한번에 깨지는 일이었다. 이렇게 사소한 하나하나가 점차 큰 의미를 가져간다는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성호샘은 하루 갈무리글에서 그리 쓰고 있었고,

“흔히 있던 계획이 밀리면 그것에 맞추려 바빠지는데,

그러나, 아예 안하면서 다른 방향으로 갈 수도 있구나.” 하고 배웠다 했지요.

 

‘눈싸움을 하다가 애들끼리 편먹고, 싸우고 울고...

잘 중재를 해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애들 자존심(?) 안 다치게 하면서 화해시키기가 어렵다. 내가 선생님들께 지겹도록 들었던 말 피해를 입으면 말로 풀어라, 먼저 용서해라... 막상 들을 때는 당연한 잔소리로만 여길 텐데 어떻게 잘 전달할지가...’

교사가 되려고 준비하는 한별샘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지요.

 

성빈이가 울었습니다.

한둘쯤 그랬겠지요.

지성이가 적에게 던진 눈에 맞았는데,

지성이는 던지지 않았습니다.

이야기인즉 한 아이가 지성이가 던진 눈을 피해 엎드렸는데,

뒤에 있던 성빈이가 맞았던 거지요.

그러니 자기가 던졌지만 자기가 의도적으로 던진 건 아니기에

안 던졌다는 겁니다.

그래도 눈싸움은 계속 되고, 우는 아이는 울고, 싸우는 아이는 싸우고...

그러는 가운데도 이글루도 만들고 진지도 쌓고

제설도 하고 작은 눈썰매장도 개장하고...

지성, 현진, 태희는 눈싸움이 끝나고도 눈 내리는 마당에 있습니다.

어쩜 그렇게 끼리끼리 모이게 되던가요.

“얘들아, 쓴 물건은 어찌 한다고?”

“치울라 그랬어요!”

이곳의 매력은 뭐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에 대해 책임지면 되지요.

물건을 썼다면 제자리 갖다 놓으면 될 테구요.

 

보글보글방은 참 좋은 놀이이고 참 좋은 공부입니다.

한 끼 식사를 아이들이 준비하는 시간이고,

나눠 먹는 마음을 배우는 잔치 자리.

희정 진희 민성 효경 재원이는 만두를 빚었습니다.

고구마맛탕을 폐강의 위기에서 건져준 것은

책방에 홀로 있던 형찬이였습니다.

요새는 학교 앞 분식집에 맛탕이 없나 보지요?

수제비: 성빈 규한 태희 지성 진주 현진.

성빈이와 규한이는 계속 티격댑니다.

그러다 자리를 잡을 테지요.

볶음밥은 민교, 하원, 하다, 규범이가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무엇이 필요한가 충분히 논의하고

가마솥방으로 장을 보러 갔는데도금새 집집이 볶음밥이 배달되었더랍니다.

잔치 잔치 열려 온 집들에서 기름내 나고

아이들은 이웃집에 맛을 보이고 다니느라 부산하였지요.

 

한데모임.

무수한 노래가 넘쳐나고(아이들은 정말 노래를 좋아해요),

장애와 힘없는 이를 이해하는 다른 언어를 배우기도 하고,

말하고 듣기, 그리고 논의를 연습하고 훈련하는 시간.

민주적인 절차라면 이런 게 아닐지요.

이 시대의 화두, 소통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길러질 것.

“수화를 하는 것도 참 좋았어요.”

처음 온 샘들이 그랬습니다.

걸음마 세현이도 함께 와서 앉았고,

동생 있는 규한이가 세현이를 잘 안고 한데모임을 하였네요.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고,

문제가 있으면 풀고,

내 마음을 꺼내고 나누고 이해하기!

 

대동놀이.

옛놀이에다 물꼬의 시대별 놀이도 불려나왔지요.

‘아이들과 선생님이 함께 즐기고,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좋은 시간이었고, 어렸을 때가 생각이 났다.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는 이 시간이 유익했고, 재미있었다.’(성호샘의 하루 갈무리글에서)

‘오늘은 특히 대동놀이가 기억에 남는다. 물건 하나 없이도 여러 명만 모이면 이렇게 재미나게 놀 수 있는데 애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놀 기회가 있을랑가 모르겄다. 내 동생도 13살인데 노는 모습을 봐도 친구들이랑 컴퓨터게임, 영화보기, 축구, 야구 좀 하고 놀던데 이런 놀이들을 하면 큰애, 작은애, 남자애, 여자애 다 어울려 놀 수 있고 좋은 것 같다.’( 한별샘)

 

지성이와 태희는 정말 쿵짝이 잘 맞습니다.

보글보글에 대동놀이, 마지막 씻기까지

샘들 말은 안 들어도 저들끼리는 어찌나 각별한지.

여기 와서 첫눈에 딱 알아본 것이지요.

“태희야, 먼저 해.”

“샘, 태희부터 하라고 해요.”

서로 어찌나 위하는던지요.

그렇게들 동색이었더랍니다.

“동생은 우리가 볼 테니까 너는 너의 삶을 살어.”

언니 오빠들한테 그리 이르기도 하는데,

진주 진희 쌍둥이는 너무 긴 세월 같이 있어선지

처음 온 이곳인데도 어느새 툭 떨어져 제 갈 길을 가기도 하던 걸요.

 

아이들이 씻고 잠자리로 건너가면

샘들이 방마다 좇아가 책을 읽어주고,

그리고 샘들 하루재기.

‘아이들이 무심코 한 행동이나 보여지는 습관 같은 걸 보며 어렸을 때의 나, 현재의 내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다.’(새끼일꾼 해인)

아이들은 끊임없이 우리의 거울이고 있었지요.

“쌤, 엄마는 욕하지 마라면서 엄마 아빠 싸울 때 막 욕해요. 어이없어요.”

한 녀석이 했던 이야기가 우리 어른들을 돌아보게도 한 하루였다는 진주샘,

문도 먼저 닫고, 신발도 먼저 가지런히 놓자 합니다.

“아이들이 적어도 쌤들은 그대로 많아야 할 것 같아요.

많을 땐 제가할 게요 라고 교체도 해주고 기분도 좋은데

적을 땐 자기 하는 거 외에도 할 일이 많아요.”

전체를 원활하게 꾸릴 최소한의 규모가 생각보다 크다지요.

안에서 벗어나 부엌에 있어서 그 거리에서 오는 관조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 지나 이제 품앗이일꾼으로 입성,

눈에 전체가 보이는 거 아닐까 싶데요.

“옥샘 말씀대로 그래야 할 때가 있다 그랬는데,

어디 가면 마음에 안 들어도 해야 하고, 싫지만 같이 해얄 사람도 있다,

마음에 안든 일 기꺼이 해보자, 마음에 안 드는 이도 기꺼이 인사해보자...”

이 말에서 감명 받았던 마음가짐이 흐트러진 것 같다며

내일은 부엌일에 또다시 집중할 생각이라 마음 다 잡은 진주샘.

‘자유학교! 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와서 봉사할 때 지쳐서 아이들을 그저 놓아둘 때도 있따. 그런데,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스스로 할 때가, 할 수 있음을 자주 느끼곤 한다. 교사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학생을 믿는 것이 최우선임을 한번 더 느낀 하루다.’

하루재기를 그리 쓰고 있던 수환샘이 덧붙이는 말,

“일, (많더라도, 힘들더라도)같이 즐겁게 하면 되지...”

그래요, 같이 즐겁게 하면 되지요!

유진샘은 새벽에 방을 나와야 하는 선정샘을 위해

아침 시간은 세현이를 맡기로 합니다.

걸음마 세현이가 함께 하는 것도 얼마나 계자다운지요.

정말 아이들이 와서 이 산골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하나의 행사를 위해 모인 게 아니라.

 

터진 흙집 수도를 임시로 취해둔 조치가

마음을 조금 아슬하게 합니다,

지난 여름 마침 마을에 몇 십 년 만의 상수도 대공사가 있어

물 때문에 애를 먹고 간 아이들이 또 이 겨울 물 고생을 할까 봐.

현진이도 그러고 갔더랬는데...

산 아래 마을 수도공사 아저씨한테 부품 어찌 되었는가 재촉합니다.

 

오늘은 먹는 날이었다고들 합니다, 먹고 쉬고 먹고 쉬고.

‘쌤들 좋다! 이유 없이 좋고 유쾌하고 다들 착하시고. 친해야만 좋은 사이가 아닌 것을 알게 된 날이다. 서로 돕고 배려하면 그것이 좋은 사이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

경이샘의 하루 정리글을 읽으며 공감!

 

새해부터 6개월 동안 지역의 작은 신문에 칼럼을 쓰기로 합니다.

말이 시평이지 그저 단상쯤 되겠습니다.

산골살이, 새로운 학교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 수행 이야기들이 담길 것.

일상적인 일들도 함께 흘러가는 계자이지요.

그런 일상 속에 계자에 같이 갑니다.

그래서 아이들 역시 짧지만 산골에서 ‘살아보고’ 있는 계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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