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계자를 끝내고 하룻밤을 더 묵은 7학년들이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을 먹고 떠났습니다.
치열하게 살다가 보자 했습니다.
아이로 오는 마지막 계자들.
떠나는 낮 버스에 오르기 전, 계자에서 새끼일꾼 자리는 몇이냐 묻기
5명으로 제한한다 했더니
그러면 세 명이 잘리는 거네요,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아니지요.
새끼일꾼에 어디 8학년만 있는지요.
9학년부터 12학년도 이미 많은 숫자입니다.
기회를 주려고 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겝니다.
물꼬 편에선 전체 일을 잘 꾸려가기 위한 것도 필요하니,
때로 품앗이일꾼들이 많이 붙지 못할 땐 고교생들 중심으로 꾸릴 수도 있으니,
하여 오래 보지 못할 수도 있겠기에 마음이 더 쓰였던 학년들입니다.
하룻밤이 그래서 물꼬 편에선 저들만큼이나 또 귀했더라지요.
그 사이에도 부모님들 가운데는
이곳 사정을 헤아려 따로 후원회비를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밥 더 멕이는 품을 헤아려주시며.
그런 부모님들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니 그네들 마음씀이 또한 어떨지
짐작되고도 남다마다요.
고맙습니다.
긴 시간을 본 아이들이고,
그래서 사랑스럽기 또한 그만큼 깊은 아이들이나
작은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하룻밤을 더 머물고 가려는 샘 대신
다른 새끼일꾼으로 대체해주면 아니 되냐 물어왔지요.
자신들의 재미를 위해 타인에게 그런 요구까지 하는 것에 불편했습니다.
우리가 즐겁기 위해서 타인을 마음 상하게 하는 것,
혹여 끼리끼리, 혹은 또 하나의 패거리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그런 마음.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건강함을 믿습니다,
그저 들뜬 마음이 컸던 까닭임을.
하루를 더 머문 몇 샘들도 떠났습니다.
보육시설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느새 품앗이일꾼이 되어 왔습니다.
고맙습니다.
‘알 것이냐, 이 짠한 마음과 기특한 이 마음을...’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렇게 키워준 시설에도 고맙습니다.
떠나기 전 교무실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잠깐 다짐과 결의가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집장가가고, 아이 낳고 키우는 세월에도
물꼬가 함께 할 수 있기를.
소사아저씨는 난장판이 된 어른공부방을 보며
허물 벗듯 몸만 빠져나간 뒷자리를 씁쓸하게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니라 정작 어른들이 하루 입고 벗어둔 옷방을 나온 옷들이
흙집 안 세탁바구니에 산더미처럼 쌓인 걸 보십니다.
묻노니, 정녕 교육이 무엇이더란 말인가요.
철욱샘은 남겨진 본관 청소를,
아리샘은 수북이 쌓여있는 빨래를 돌렸습니다.
지난 여름도 산을 다녀와 마음 그리 쓴 그이입니다.
겨울 일정을 마친 샘들을 위해 위문 오는 준샘을 만나고 가련 마음도 컸지만
해지기 전까지 그렇게 움직이고 떠났지요.
남겨진 이들에 대한 배려와 살핌, 애정,
고맙습니다.
선정샘 가족은 하루 더 머물다 가기로 했습니다.
한동안 여기서 있을 초등 1년 성빈이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러저러 살필 것들이 남은 까닭도 있었을 겝니다.
양념통들도 정리하고,
앞치마까지 죄 빨아 너셨지요.
아, 어느 누가 그리할 것인가요.
오후엔 철기샘이 이곳 식구들을 실어 읍내 나갔습니다.
보름의 계자동안 밥바라지를 한 선정샘은
막판에 손목에 파스를 붙이고 움직였지요.
학기 가운데 2박3일의 짧은 모임도 규모 겨우 스물 안팎인데도
끝내고 나면 손목 시리고 허리 빠질 것 같습니다.
얼마나 애를 쓰셨을 것인가요.
그의 놀라움은, 단 한순간도 ‘내가 도와줬음네’ 하는 표를 내지 않음입니다.
그의 겸손에서, 그의 강인함에서, 또 배웁니다.
선정샘이며 목욕탕들을 갈 동안 세현이랑 놀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계자 기간 이 혹독한 겨울 속에서 가장 애를 쓴 이는
바로 세 살배기 안세현입니다.
아이들에게 늘 ‘낼모레 예순’이라 소개하는데,
정말 할머니가 된 것 같습니다.
업고 재우고 같이 자고 씻기고 밥을 먹이고 손톱을 깎아주고...
손주 보는 기분이었지요.
이 아이도 계자 구성원이 되고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일꾼이 되리라, 합니다.
세월이 고맙습니다.
물꼬에서 살아가는 날들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