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22.해날. 갬

조회 수 1191 추천 수 0 2012.04.30 15:07:59

 

 

 

걷혀가는 구름 사이로, 말개진 얼굴로 하늘이 비죽거려요.

바람이 조금씩 붑니다.

 

자도 자도 오는 잠,

 

여독인지 부담인지 게으름인지 일상의 피로인지 의기소침인지

봄볕 아래 조는 닭 모양 그러고 있은 휴일 하루였습니다.

아이는 못 다한 공부를 좀 한다며 책상 또 악기랑 씨름하고,

소사아저씨는 된장집 봄 대청소 중이었지요,

이불도 내다빨고 먼지도 털고.

 

부추를 캡니다.

사위도 안 준다는 봄 부추, 라고

중앙아시아 여행길에서 아들이 전해주었던 그 봄소식 속의 부추.

부추전을 밥상에 올리며 조금 생기 일었나 봅니다.

비로소 여행기 메모들을 들추며 짚어보았지요,

여행보고서와 청탁받은 세 편의 여행기 숙제를 아직도 손도 못 대다.

이러니 애들 뭐라 할 게 아닙니다,

저(지들)가 도저히 안 될 지점이 되면 움직이겠지요,

그러다 안 되면 손 놓겠지요.

 

‘내가 누워있는 화강암이 회색으로 돌변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그리고 내가 느닷없이 소리를 지르게 될 것 같고,

그러면 사람들이 나의 방문을 부수고 우르르 밀려들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나도 모르게 말해선 안 될 것까지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 같고,

그런가 하면 아무리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몰라서 끝내 한마디 말조차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한 소설에서 <말테의 수기>를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10대의 마지막을 너덜하도록 읽던 문고판이 생각났지요.

그런 불안에 대한 공감이 10대만 있는 게 아니었음을 20대에 알았고,

20대만도 아님을, 30대도,

심지어 40대도 그러함을 확인하는 세월이었더랍니다.

불안이란 것이 생의 동행자임을 그쯤 되어서야 마침내 알았던 게지요.

물론, 늘 불안한 건 아니었습니다.

평온 사이에 한번 씩 끼어드는 일종의 삶의 구색 같은 것인 줄도

그 즈음의 나이에 이르러서야 압니다.

그리하여 불안도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던 게지요.

평온과 불안이 그리 공존하고

죽음과 삶이 한 순간에 함께 하는 것이 우주적 질서이구나 주억거리고

그렇게 동전의 양면이 생의 온 구석에 함께, 동시간대에 있음을 이해하고도

이렇게 순간순간 또 마치 처음이라도 알게 된 진리처럼

화들짝 놀라고 있는 봄날입니다려.

 

한편, 찬란한 봄입니다.

아, 봄은 그 자신보다 더 찬사를 받는다 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싶은데,

뭐라 해도 봄은 찬사받기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예쁜 집을 짓고 누군가는 차를 덖고 누군가는 밭을 갈고 누군가는 사랑을 하고,

뭔가를 할 수 있을 겝니다, 그대도 나도 이 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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