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8.19.해날. 종일 흐림

조회 수 983 추천 수 0 2012.09.10 01:05:00

 

 

고추를 말립니다.

고추장집 방에 연탄불을 넣고 방바닥에 말립니다

옛적 어르신들도 그렇게 방에다 널었더랬습니다,

간간이 볕에도 말려가며.

몇 해의 태양초에 대한 우리의 결론도 그러하였습니다.

세상이 그악스러우니 하늘도 그렇다는 생각들만치

올해 여름 가는 걸음이 물길입니다.

비 많은 때 아니어도 볕만으로는 건조가 쉽지 않았던 여러 해였습니다.

우리 먹을 건 해야지, 그리 말립니다.

 

세상은 자주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어제 어르신 한 분 모시고 양평으로 가던 초행길,

뭔가 이상하다, 도착할 때쯤 된 것 같은데,

네비게이션 화면이 멈춰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망가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 이상하다에 있습니다.

이상했다,

우리는 자주 이상기류를 감지합니다.

직감!

그런데 그 직감은 대체로 불운과 더 죽이 맞더라는 생각이 방정맞게 찾아옵니다.

망가진 네비,

있다고 잘 듣거나 잘 보는 것도 아니었으나

그마저도 멈췄다 싶자 와락 튀어나온 두려움.

천 날 만 날 차안에 앉았는 것이

날이 더우나 도로공사중인 걸 지가 뭐 알겠냐 싶어도

그간 네비는 무사히 길을 안내해왔는데

없다는 걸 알자 무서워진 것.

그런데, 그제야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그것도 몇 번이나 말을 하는.

곳곳에 이정표란 것이 있었던 겁니다.

갑자기 살만해집니다,

그리고 살아야 한다, 그런 비슷한 감정들이 올라옵니다.

여든넷의 어르신은 스마트폰을 익히고 그것으로 글과 그림을 그린 지 이태,

나는 아직 예순이지도 않습니다.

우리 삶의 이정표도 이미 그리 서 있었을지니.

 

오늘 집어 들었던 올해의 신춘문예 시들이 담긴 책에서

이십년도 더 넘은 인연을 발견,

이름이 특이해서도 잊힐 수 없는 그 친구는

그가 고교 졸업을 앞두고 하던 친구와의 여행에서

유달산을 같이 오르는 연으로 만나 완도며 여러 날을 동행했더랬지요.

그들 나이 서른 즈음까지 간간이 소식이 왔습니다.

여전히 시를 쓰고 있던 그였지요.

그의 시는 몇의 신춘문예에 최종심까지 올라 있었습니다.

그렇게 줄기차게, 아마 지금도 고시촌에서, 쓰고 있었습니다.

너야말로 시인이고 너야말로 승자다,

집요차게 시를 쓰고 내일도 시를 쓸 것이므로,

손뼉쳐주었습니다.

“시를 쓰고 있는 그것, 그게 중요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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