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같은 저녁바람입니다.

짜면 물이 나올 것 같은 날들입니다.

마음까지 덩달아 그럴 판입니다.

 

물꼬로 오는 상담전화의 종류는 여러 가지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출발은 언제나 아이들 이야기인데

그 끝은 결국 부모 자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우리, 우리 어른들 문제일 때가 대부분이지요.

“물꼬는 마음을 푸는 곳이고, 옥샘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게 일이니까...”

오늘도 이야기 하나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하고 끊으려는 것을

대번에 짐작되는 바 있어 되물었더니 그제야 이야기를 합니다.

집안에서 벌어진 일의 속앓이입니다.

전하는 이야기를 다 들은 뒤

저는 그것이 사람살이가 얼마나 흔한 일인지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계속 돌아가고 우리는 계속 살아갈 거라는 말도.

특수가 아니라 보편이란 걸 알면

견딜 수 없는 일들도 좀 나아지지요.

한 여인이 죽은 자식을 안고 붓다를 찾아갔더라나요.

어느 집에서고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이 있다면 내 이 아이를 살려주겠노라했던가요.

있을 리 만무이지요.

그렇게 사람의 날들이 갑니다요...

그런데, 아, 누가 누구를 구원하겠는지요...

 

큰 도시의 심리치료연구소에 다녀왔습니다.

한 아이의 치료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이고

누구나의 이야기이고 한편 특정아의 이야기이기도 한.

예비면담에 동행합니다.

때로 아이 편에서 때론 상담자 편에서 시간 남짓 이어갑니다.

사실 '듣는 일'이 상담의 전부라면 전부이지요.

도대체 마음의 일은 그 마음의 주체자가 어쩌지 못하면

아무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거지요.

누구나 거쳐 가는 시간이 있습니다.

사는 일에 무슨 일인들 없을까 하지만

늘 사건은 뜻밖의 일이 되고 가슴은 놀랍니다.

그게 내 부모이고 벗이고 내 자식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 모든 시간 속에 정작 ‘나’는 나를 만납니다.

그러고 보면 사는 날들이 다 거울을 놓고 있는 날들이다 싶어요.

아니 스크린이라는 말이 더 옳겠습니다.

거기로 영화처럼 지나왔던 생의 순간순간이 희미하게 때로는 선명하게

때로는 환한 기쁨으로 때로는 심연 같은 좌절로 옵니다.

그대는 안녕하신지요...

 

유설샘의 전화와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한 소정샘의 메일이 있었습니다.

아끼는 제자 혹은 후배들의 삶의 전갈은 설혹 고뇌하는 시간조차도 깊은 성장으로 보여

반갑습니다.

최근 겪고 있던 근심에 대한 위로(?)쯤이겠습니다.

저는 이 시대 부모로 어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 많은 요즘에 대한 묘사로 화답.

그저 자신이 열심히 살면 되는 줄 알았지요.

그러면 아이들이 보고 온다고.

그러나 그게 또 다가 아닌 모양...

 

참, 티벳문화연구소의 다정선생님이

와칸계곡 원정을 떠나시며 만든 다르촉을 보내오셨습니다.

떠나는 걸음 준비만으로도 바쁘셨을 것을,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주위의 어르신들은 어찌 그리 한결같이들 바지런하신지...

하기야 그러하니 일가를 이뤄내셨을 것.

보면 닮아야 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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