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고추를 말리고 있습니다.
날이 물기 많으니 고추장집 방 하나를 고추 건조장 삼아
불을 때고 있습니다.
볕이 보이면 내다 널고.
학교 등 뒤 댓마에서도 밤새 고추건조기 돌아가는 소리가 건너옵니다.
“이생진 선생님한테서 뭐가 왔어요!”
우두두두두,
집안일로 풀이 많이 죽어지내던 아이가 오랜만에 복도를 뛰어오는 소리.
선생님은 아이에게도
선생님과 동행한 여행 뒤로 아주 각별한 분 되셨지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라 어렵고 심심할 것 같았는데...”
정말 젊으시고 유머감각 있으셔서 즐거웠다지요.
예, 시인 이생진 선생님이 시집 한 권 보내오셨습니다.
제 가진 선생님의 시집 한 권을
다른 이에게 건넨 것 보시고 챙겨보내주신 것입니다.
당신이야말로 삶으로 시를 쓰십니다.
시는 부지런한 자의 문학임을 늘 다시 생각게 하시지요.
선정샘이 교무실에서 필요한 문구도 몇 보내왔습니다.
고맙습니다.
금강 54km를 흘렀습니다.
백제보 아래 백마강 가에 차를 대고 카약에 올랐지요.
물은 불어날 대로 불어나있었고
여러 날의 비에 이미 많은 것들이 떠나려갔으며
이제 물만, 물만 넘치고 있었습니다.
비 계속 내리는 속에 강도 텅 비었고,
강둑 도로들까지 인적 드물었습니다.
전국이 다 창대비로 뒤덮인다는데 강 위 작은 카약에 그리 몸을 실었습니다.
이건 죽자고 하는 짓이라 의심이 들만큼 그렇게 노를 저었지요.
작은 일에 목숨 걸 듯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거는 거지요.
그렇게 자신을 밀어보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을 내몰아 주어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생을 밀고 가는 거지요.
어쩌면 극한의 운동들도 그런 게 아닐까 싶은.
머리 위로 부여대교를 보내고 멀리 강경읍을 지나
다시 황산대교 아래를 흘러 몇 개의 섬을 지납니다.
옷은 어느새 다 젖고,
추위가 엄습하고,
그러나 노를 젓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않습니다.
밀려드는 생각을 끊임없이 물에 밀어넣고.
물의 수면에서 보는 사물은 사람을 더욱 겸손케 하지요.
청포리와 용두리가 마주보는 어디깨였던가요,
배를 대고 텐트를 칩니다,
너른 강과 넓은 들 경계에 점으로 달랑 얹힌.
어느새 짙은 어둠에 정말 우주에 홀로 서 있었습니다.
이미 넘칠 것 같은 강은
다시 상류에서 방류한 물로 수면이 올라가고
거기 또 비까지 빠지고 있었습니다.
자는 잠에 물에 휩쓸려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잠깐.
생이 고달플 때 어쩌면 우리는 누구나 그런 꿈을 꾸는지도.
물이 곁에 찰랑이는 아침,
마치 홍수로 세상이 다 잠긴 듯한.
다시 노를 젓습니다.
어쩌자고 그 물 위를 한낱 나뭇잎마냥 떠가려했던 걸까요.
다행히 비가 잘 피해주었습니다.
웅포대교를 지나고 금강대교를 지나며 멀리 금강하구둑 보입니다.
죽자고 한 일이 아니나, ‘산’ 거지요.
그런데 왼쪽으로 군산과 오른쪽으로 서천이 마주하고 있는 거기,
어느 쪽으로도 배를 올릴 수 있는 곳이 보이지 않아 한참 맴을 돕니다.
서천 조류생태전시관으로 어찌 어찌 배를 대고
부여로 돌아오는 길 무지개가 반겼더랬네요.
라디오에선 곳곳에 떤 무지개 소식을 전하고.
삶도 그런 환희이길.
백마강가에서 차는 황혼을 이고 있었습니다.
외로움이 꼭 처연한 것만은 아닙니다.
저리 황홀한 아름다움일 때도 있는 거지요.
살아있어 보기!
처서, 모기 입은 돌아갔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