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 <그 여름의 끝>(이성복/문학과 지성사/1990)
8월 마지막 날,
장난처럼 나의, 그리고 우리의 절망도 끝이 나기를.
‘진짜 엄마’를 찾아 나선 소설 속의 여자 아이가 말했습니다.
‘... 그리고 예전의 조건 (* 찾을 엄마의) 하나를 고쳤다.
그렇지만 늘 불행하지만은 않다.
늘 불행한 사람이라면, 나를 알아보지 못할 테니까,
불행한 사람이라면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
오직 자기 가슴속만 보고 산다.’
혹 나 자신의 가슴 속만 보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그렇거나 저렇거나, 이러나저러나,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밖에 다른 무엇을 하겠는지요.
세상이 망한대도 어제하던 그 일을 할밖에...
참, 과를 신설하는 대구의 초빙교수 건은
결국 접기로 최종 정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