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3.불날. 갬

조회 수 1026 추천 수 0 2012.11.08 03:14:26

 

 

바람이 입니다.

날은 갰으나 바람은 날카로움을 동반하기 시작,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잎들.

어제 어수선하기 짝이 없는 날씨는

처음 온 아이를 심란하기 이를 데 없게 하더니,

오늘은 그나마 날이 훤해져 다행입니다.

늘 산골살이에 적절하게 고마운 하늘!

 

아침, 달골에서 짧은 해건지기(수련과 명상)를 했고,

오전에 아이들은 마당에서 공을 찼고, 배드민턴을 쳤습니다.

점심 때 아이는 떼를 썼고,

짐작하던 그 일에 대해 아이의 절망을 끌어냈고,

제법 긴 시간이 흐른 뒤 그렇게 고비를 지나자

아이는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이르렀지요.

 

젓가락질이 서툴러 방법을 가르치는데 힘들어한 일도 있었네요.

잘 되지 않자 소리치고 힘들어하고 짜증내고 금세 포기하고.

반응하기에 대한 조언,

‘하지 말라’가 아니라 어떻게 할지 그 대체행동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짜증이 실제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음을 ‘인지’하기,

그리고 인지를 통한 문제해결.

그러면 차츰 아이가 하는 말하기에도 변화가 올 수 있을 것.

아이의 말 속도는 일상에도(가령 좋아하는 것을 먹을 때라든지)도 영향을 주고 있지요.

혼자 먹을 때도 사과를 꼭 양손에 쥐고

입에 한꺼번에 털어 넣는 약처럼 먹고 있는 아이.

 

가마솥방 앞 해우소 가는 길 풀을 같이 뽑고,

포도효소를 만들기 위한 포도알 따기를 했고,

저녁에는 읍내에서 돌아온 형아랑 레고를 했습니다.

 

“내일도 김치부침개 해주실 수 있죠?”

가리는 게 많은 이 아이, 김치도 잘 먹지 않는다는데,

어제도 오늘도 김치부침개를 맛나게 먹었습니다.

저녁 밥상엔 삶은 닭과 닭죽.

고기를 잘 먹지 않는 밥상에서 아주 특별한 저녁이었는데

아이는 닭죽 역시 안 먹겠다더니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렇게 잘 먹는데 왜 (부모님 말씀으로는)잘 안 먹는대?”

“집에서만 그래요. 엄마 아빠가 다 해(멕여?)주니까.”

설거지며 행주질이며 수저 놓는 거며

하나부터 열까지 가지런히 하기를 익히고 있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로 오랜만에 흥에 겨운 하루!

저녁 밥상에서 우리는

시시콜콜한 일상사(아이의 학교생활, 집안풍경)를 나누며

아주 아주 유쾌해졌더랍니다.

 

“(지낼 만한데, 혹은 재미는 있는데) 엄마 아빠 없으니 허전해요.”

“(물꼬의 느린 여러 가지 정리정돈 식에 대해 문득 복도를 걷다가)

이렇게 좋은 예절을 배우면...”

저 눈에도 뭔가 좋은 배움으로 보이는 모양이지요.

아이는 저녁에 “옥샘도 드세요.”하며 초컬릿을 까서 입에 넣어주기까지.

이렇게 우리는 ‘관계맺기’ 하고 있습니다.

 

밤에 붓명상을 하는 교사 곁에서

아이는 색연필로 같이 명상을 했고,

달골 올라와 같이 책을 읽다가

날적이(일기)를 쓰고 잠이 들었네요.

 

낡은 표현이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강합니다.

우리는 정작 우리 어른들이나 걱정할 일입니다.

아이는 잘 적응하고 있고, 심지어 편하게 느끼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영악합니다.

아이는 상황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알지요.

그들은 결코 사람이 아닙니다. 동물입니다.

아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에 대해 말해보고

안 되면 이제 깨끗하게 받아들입니다.

예를 들면 게임기.

사람들은 이곳에서 매를 들거나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치지 않는데도

아이들이 말을 잘 듣는다고 신기해합니다.

그들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설득하면 됩니다, 진정성과 질김으로.

한편, 아이들은 용감합니다.

이 아이만 하더라도 홀로 낯선 곳에 와서 이토록 잘 지낼 수 있다니요.

“장하다!”

“칭찬이에요?”

 

한편, 아이는 하나여도 백이어도 같은 힘이 든다는 생각.

오랜만에 조금 노곤합니다.

그런데 아이 백은 별 힘이 안 드는데, 심지어 신이 나는데,

어른은 다섯만 모아도 힘에 겹습니다, 어찌나 자기 옹벽들이 두터운지.

 

“와, 별 좀 봐요!”

아이는 이곳을 즐기기 시작한 듯.

아, 엄마아빠랑 꼭 다시 놀러오겠다 했답니다,

이 산골에선 하루도 못 견디겠다던 게 오전이더니.

 

이곳 촬영을 위해 소식을 몇 달째 전하고 있는 방송국에서 또 연락.

한 해 한 차례만 영상매체랑 만나기, 거듭 확인!

“내년에 하죠.”

하여 내년에는 꼭 이 프로그램과 촬영을 하겠다고 약속했더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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