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31.물날. 맑다 밤비 뿌리다

조회 수 981 추천 수 0 2012.11.12 11:33:31

 

“어, 갈수록 엄마 도력이 높아지는데?”

요새 아이가 즐겨하는 농담.

정말 우리 생이 이 가을처럼 깊어갈 수 있다면...

 

간밤의 거친 바람은 나무 보일러실 지붕을 뒤집어 멀리 던져놓았습니다.

짓다만 듯하게 마무리한 본관 뒤란 흙집 보일러 지붕 구석,

양철로 덮고 돌로 눌러놓았더랬습니다.

다시 얹어 단도리를 합니다.

그래도 가을입니다.

가을이 어디라고 풍성하지 않으며

어디라고 빛나지 않겠는지요.

이 산마을 낡은 학교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마당 건너 아주 아주 커다란 백합나무는

가마솥방 창을 황금빛으로 들어와 탄성을 지르게 하지요,

하여 이 산골 삶의 수고로움을 충분히 위로하고

겨울 앞에 동동거리는 마음을 쓰다듬어주고는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최고였던!

허나 이 가을, 그 찬란함을 보기도 전 다 떨어져내립니다.

절반 이상 아랫부분을 다 털어냈지요.

닥쳐올 겨울의 혹독함을 먼저 아는 게지요.

여느 겨울보다 이를 것을 먼저 아는 겝니다.

말해 무엇하려는지요, 위대한 자연!

 

달골에 벌어진 공사의 일부인

내부공사가 마무리 되었다고 청소까지 여러 날을 하여

이제 좀 시멘트 먼지를 벗나 했는데,

웬 걸 다시 물이 새고

그 소식 알렸으나 가타부타 말이 없는 공사 측.

오늘도 소식이 없습니다.

사정이야 다 있을 것이나 말을 해야지요.

어째 일을 이리 하나 싶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넘어가네요,

겨울은 발 앞에 이르렀건만.

 

멀리서 벗이 다녀가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렇습니다.

물꼬의 논두렁이고 학부모인 이상찬님이 후배 성군님과 왔습니다,

곡주를 두 상자나 싣고 바나나도 한 상자, 그리고 식빵을 잔뜩 싣고서.

더하여 침대형 쇼파도 하나.

이국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공부 보내고

홀로 살 짐을 챙기며 장만한 것인데,

되려 짐이 되었더랍니다.

언젠가 이곳 된장을 얻어먹고

답례로 좋은 소금을 보내준대더니,

그래서 된장 또 얻어먹겠다데요,

그 소금을 실어도 부려주었습니다.

어디 그래서만 나누겠는지요, 나누고말구요.

저녁, 아이가 금세 다 먹을 기세인 바나나를

돌아가며 면소재지에서 다시 실어주고

아이 용돈이며 식구들 위해 고량주와 값비싼 요리들...

이런, 이건 너무 비싼 후배 방문입니다.

오래 전 우리 세탁기가 빨래를 잘 못한다는 소식도 마음에 담아두더니

세탁기도 사주실라 합니다.

이렇게 비싼 걸음이니 어찌 자주 하겠는지.

“잘 쓸라고 번다!”

고맙습니다.

 

기표샘이 오는 주말 친구와 손을 보태러온다는 소식도 들어옵니다.

초등 3학년이던 그 아이, 새끼일꾼으로 오랜 시간 손 보태고

대학을 가서도, 그리고 군대를 다녀와서도 이리 힘입니다.

겨울 앞에 우리들의 발을 너무나 잘 아는 그.

고맙습니다.

 

숙제 같던 글 하나 있었습니다.

동양 옛 여행가들의 고전을 번역하는 작업을 하던 스승님 한 분,

드디어 다섯 권으로 책을 내게 되었는데,

여럿에게 축하글을 부탁했더랬지요.

두어 차례 마음을 고사하였으나 독촉이 있었고

그예 오늘 써서 올렸습니다.

그 애씀을 축하함이 마땅할지니.

 

품앗이샘의 글 하나 닿았습니다.

 

북적이는 지하철 안에서

문득,

옥샘에게 정말 큰 빚 지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주하고 계신 마음의 근심,

어떤 종류의 것인지 잘 알진 못하지만,

오늘은 정말 문득,

선생님께서 (고맙고도 고맙게도) 늘 그 자리에 계시기 위해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한 사내의 아내로서, 그리고 한 존재로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셨나, 그로 인해 아리는 순간이 왜 없었겠는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어요.

 

그 삶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이제껏

,지금은 이렇게 당연한데, 큰 빚 지고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눈물도 아닌 것이

마음 위를 궁글던 맑고 차가운 물방울들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옴, 아, 훔,

소정 드림

(* 사적인 메일을 이리 보여도 되나? 벌써 공개 했뿟네. 용서를.)

 

그런 거 넘들도 알게 홈페이지 좀 올리고 그래, 그리 웃자는데,

그 마음이 이 마음으로 와서 그만 찡해집니다.

다 고마울 일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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