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8.물날. 봄바람 같은

조회 수 1024 추천 수 0 2012.12.12 15:38:35

 

 

바람이 세나 봄바람 같이 달아

장 만들기 참 좋은 날,

가끔 어둔 구름이 지나 가기도 하지만.

 

올해는 모과차를 못했습니다.

마을에서 얻거나 주워다 했던 것인데,

올해는 시퍼런 채 떨어져 내리거나

그것조차 몇 개 되지도 않아.

불 위 주전자에 올려두면 계자에서 아이들이 내내 잘도 마셨지요.

아쉽다. 유자차라도 만들어야겠네...”

그때 울리는 전화.

우리의 박선영 선수의 연락이었습니다.

지난 봄 혼례 올린 선영샘은 내년 봄 해산을 합니다.

그의 고향 고흥엔 유자밭 하나 있는데,

어머니가 관리하신다지요.

거기서 딴 유자를 보냈다는 소식이었더랍니다.

고맙습니다.

일상의 기적들이 끊임없는 이 산골살림...

 

다시 아침 일곱 시부터 가마솥에 불을 지핍니다.

어제와 같은 과정을 밟지요.

콩 씻고 삶고 밟고 메주를 만들고

고추장집 방 한 칸 깔아놓은 짚 위로 옮기고...

 

고추장도 담급니다.

찹쌀로 식혜를 만들어 조청을 고고

고춧가루 위로 빻은 메주가루를 넣고

매실효소도 넣고 소주도 넣었습니다.

거기 콩 삶은 물을 받혀 개었지요.

힘 좋은 아이가 소사아저씨랑 돌아가며 저어주었답니다.

 

평상엔 어느 틈에 어머니가 채를 썬

무와 고구마와 호박오가리들이 하루 새 벌써 꾸덕하네요.

올 겨울 계자는 한 차례 뿐이니

주전부리가 더욱 넉넉하겠습니다.

가래떡과 떡볶이와 호두와 은행과 밤과

호박죽과 곶감과 묵은지부침개와 곤조(삶은 고구마를 말린)와 식혜와...

 

가끔 사라진 물건이 있습니다.

오늘은 아주 아주 커다란, 꼭 고추장을 버무릴 때와 김장 때 쓰이는,

고무 대야 하나가 엊그제부터 보이지 않아 애를 태웠습니다,

둥근 대야 가운데는 젤로 커서 이런 일에 아주 요긴했던.

내내 쓰는 물건이 아니니 언제부터 사라진지는 모르나

지난 가을 들머리에 쓴 일이 있었던 건 다들 떠올렸으니

그 이후 없어진 게지요.

건물 둘레의 살림을 맡은 소사아저씨도 통 모르겠다십니다.

작으면 작아서 안 보인다 하지만

이리 커다란 것은 어찌 사라지는지.

아무리 우리 살림이 넓고 널려있다지만.

아주 가끔은 버젓이 두 눈 뜨고

우리 살림이 새나가는 걸 알 때도 있으나

싸우지도 못하고 축나는 세간을 바보 같이 바라볼 때도 있습니다.

누구라도 잘 쓰면 되었다 해야는 겐지, ...

 

일 다 하고 나니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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