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29.나무날. 흐림

조회 수 922 추천 수 0 2012.12.12 15:40:04

 

 

꼬박꼬박 나오네!”

닭장에선 달걀이 두 개씩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씩 나오던 알이 날 추워지며 멈췄다싶더니

한 달 전부터 둘씩 다시 나오고 있지요.

봄이면 중닭 두엇도 알을 내겠다 짐작되니

그땐 사들이는 달걀 없이도 부엌살림이 흥건켔다 합니다.

 

메주 쑤는 사흘째.

메주를 내내 쑨다는 말은 아니고

이즈음 메주 쑤는 결에

고추장이며 막장이며 담그고

된장이며 간장이며 두루 살피는 게지요.

띄운 청국장도 절구에 소금 넣고 찧어둡니다.

잘 떴길래 하룻밤만으로도 되겠다 하지요.

된장과 고추장을 담을 녘 해먹는 별미입니다,

두고두고 먹진 않아도.

 

한 사흘 부엌 뒤란의 가마솥 앞에서 다들 애썼다고

식구들 모다 목욕탕 갑니다.

아이 외할머니도 모셔다 드리러 나서려던 걸음.

마침 이번 학기 장애재활센터 마지막 수업이 내일로 잡혔습니다.

간장 된장 막장 청국장 고추장,

어머니가 예서 가져다 드신 지 몇 해 되었지요.

그래서 더욱 꼭 손 보태러 오신다십니다.

그래도 내년부턴 걸음하지 말라 말씀드리지요.

일이 많이 익었으니 해서 보내드리면 될 겝니다.

 

서울서는 모임 하나 있었습니다.

뗏목 발해1300를 타고 떠나 돌아오지 못한 선배를 기리며 이어오는 모임.

다가오는 추모제에 대한 의논이었지요.

걸음 하기 어려운 때여 소식만 듣습니다.

 

근래 아이랑 함께 긴 프랑스 청소년 소설을 하나 같이 읽었습니다.

 

... 살아오면서 늘,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듯 그런 식으로 서로를 다독거리는 부모님 모습을 보아 왔다는 걸 나는 깨달았다. 한 사람이 약해지면 한 사람은 강해지는 식으로. 한 사람이 두려워하면 한 사람은 담대해지는 식으로. 그렇지만 삶 속에서나 사람들 속에서나 그만큼 완전한 방법은 없다는 게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건 오언의 얘기처럼 순간순간이 안 되면, 날마다, 날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게로 최선을 다하는 거였다. 그리고 행운이 따른다면 가까운 곳에 가만히 기댈 누군가의 어깨가 있을 터였다...

 

서로 그런 겁니다, 친구도 가족도.

산골에서 가끔 아이랑 서로 그러고 삽니다.

 

어떤 이야기를 참으로 진실 되게 만드는 것은 잘 들어 줄 사람이 있다는 걸 아는 것.

그리고 이해해주리라고 믿는 것.

 

그런 거지요, 좋은 관계는. 아무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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