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 종일,

짙어졌다 멈췄다 다시 내리는 밤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요강을 비웠다 합니다.

“안을 수세미로 닦으라고 하니까

건호가 더럽다면서도 손을 넣어 닦고 윤호가 헹구고...”

류옥하다 형님과 함께

그렇게 저들 뒤치다꺼리를 스스로 잘해내고 있답니다.

 

계자에서 쓰였던 수건 정리.

많기도 합니다.

재봉질도 하지요.

계자 전후는 꼭 바느질감이 많습니다.

계자 준비 가운데 한 과정이 그렇고,

사람들 우르르 다녀가면 그 자리 또 터진 것들이 나오지요.

앞치마도 두 개 수선.

 

실타래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쓰는 뒷간을 폐쇄하고

어른들이 쓰는 큰 해우소를 같이 쓰기로 합니다.

밤, 어느 순간 우르르 같이 해우소를 갔네요.

“옥샘, 이거 어떻게 해요?”

“뚜껑 이렇게 열고...”

그때 뒤에서 다른 녀석 왈,

“앉아. 근데 다리에 힘이 있어야 해.”

“못하겠어요.”

결국 포기하는 아이.

똥 누기 위해 쪼그릴 힘조차 없는 우리 아이들인지.

하여 첫째 칸 좌변식에 들어갔지요.

 

혼자 보기 정말 아까운 장면들이

아이들과 있으면 얼마나 많은지.

오늘 피아노 앞에서 네 아이들이 모다 모여

건반을 두들기거니 기웃거리거나 하는데,

건호가 혜준이를 톡톡 집적거렸습니다,

혜준이의 실내화를 들고 와 신으라고 슬쩍 주는 거지요.

“하다야, 하다야, 글쎄 오늘 건호가...”

“다른 애도 아니고 건호가? 지 생각만하는 그 건호가?”

오후 새참 시간엔

개인접시가 하나 비었을 적 싹싹 윤나도록 물기를 닦아 건네주더라나요.

혜준이를 어찌나 끔찍이 챙기는지.

“야아, 건호는 여자한테만 잘하는구나.”

그때 우리의 성빈 선수, 아니 윤호 선수였나,

한마디 던집니다.

“맞아, 옥샘도 여잔데.”

푸하하하, 나름 비아냥거릴 명분이 있단 말이지요.

“둘이 손도 잡고 다녀요.”

둘이 사귄다고 놀리는 아이들.

함께 있으니 즐거울 일이 많습니다.

이 아이들과 쏟아지는 깨알에

슬쩍 부모님들께 미안한 마음이 다 들었지요,

이 유쾌한 아이들이 여기 와 있으니.

 

오후, 실꾸러미 시간을 하고

(물론 오늘도 우리들이 무엇을 하였는지는 지나치시는 걸로!),

저녁 밥 때 부엌을 들어서니

아이들, 배고프다며 밥상을 차려놓았습니다.

행주로 식탁 닦고 수저 놓고

쟁반 꺼내놓고 국그릇 꺼내놓고...

급하면 저들이 다 합니다.

고구마 곤조 죽을 끓였습니다.

곤조라면 고구마를 삶아 말린 것.

우리 건 다 먹어서 남도에서 보내왔던 걸로 했는데,

좀 질겼네요.

이게 제대로 하면 참말 맛있는 음식인디... 

 

그리고 류옥하다 형님의 날적이,

“아이들이 보기보다 일을 잘한다.

방청소, 시킨 대로 이불을 털고 쓸고 닦았다.

‘불평을 두레박처럼 내놓’으면서도.”

 

이것들과 이 산골서 방학 한 달을 다 지내보는 것도 참 좋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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