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6.흙날. 맑음

조회 수 896 추천 수 0 2013.02.05 01:16:04

 

 

점심 밥상을 물리고

난롯가에서 노래 하나를 듣고 따라 부릅니다.

산마을 낡은 학교에서 한껏 부르는 노래.

노래가 주는 힘이 있습니다.

아, 이 산마을 참 좋습니다.

부엌 바닥을 닦고

먼지를 털고

가마솥방 청소를 하고

반찬들을 만들고

개밥도 닭밥도 좀 챙겨보고

교무실 책상에 쌓여있는 우편물도 뜯고,

그리고 늦은 오후 잠시 방으로 들어

책 하나 쥐고 뒹굴기도 합니다.

주말입니다.

내일까지 잘 쉬며 서울 다녀온 여독을 풀리라,

그리고 다시 산골살이 흐름이 이어지리라 하지요.

 

 

기차를 기다리며/ 천양희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긴 길인지

얼마나 서러운 평생의 평행선인지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역은 또 얼마나 긴 기차를 밀었는지

철길은 저렇게 기차를 견디느라 말이 없고

기차는 또 누구의 생에 시동을 걸었는지 덜컹거린다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를 기다리는 일이

기차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며 쏘아버린 화살이며 내뱉은 말이

지나간 기차처럼 지나가버린다

기차는 영원한 디아스포라, 정처가 없다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기차역이 있는지

얼마나 많은 기차역을 지나간 기차인지

얼마나 많은 기차를 지나친 나였는지

한 번도 내 것인 적 없는 것들이여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지나간 기차가 나를 깨운다

기차를 기다린다는 건

수없이 기차를 뒤에 둔다는 것

한순간에 기적처럼 백년을 살아버리는 것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차도 기차역을 지나치기 쉽다는 걸

기차역에 머물기도 쉽지 않다는 걸

 

;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창비/2011) 가운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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