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8.달날. 흐리다 맑아감

조회 수 883 추천 수 0 2013.02.12 04:00:52

 

 

흐린 하늘 맑아지더니 찬바람이 일어납니다.

어제의 상여는 오늘 빈소를 떠났겄습니다.

한 아이의 아비를 보내고,

어린 상주로 마음 애잔했던 밤이었습니다.

산 사람은 또 살 테지만...

 

연일 낮은 기온으로

소사아저씨는 본관 뒤란 화목보일러에 이른 아침 불을 땠다 합니다.

불을 피우고 수돗물을 틀고,

겨울 산마을은 일이랄 것 없겠는 그게 일입니다, 큰일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나와 있어도 들어가면 난로와 후끈한 아랫목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온 걸음에 내일 파주에 들릴 일로

다시 하루를 더 서울서 보내고 있습니다.

서울 와 있으면 좁은 방 하나에 있는 TV가

자주 우리 모두의 오락거리가 되고는 합니다.

“엄마가 이런 걸 다 보네. 종편이잖아.”

종편이란 의식도 없이 채널을 돌리고 있습니다.

이 시대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날카로운 진보성(?)은 그렇게 일상에 무뎌져가고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한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시대가 좋아 TV가 없어도 여러 매체로 어떤 일들이 그 안에서 펼쳐지는지 대개 알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않아도

그 대사들로 누구의 작품인지를 알게 됩니다.

이 시대 거장입니다, 저 역시 참 좋아하는.

가정은 우리 모든 삶의 기반이고

그래서 대부분의 소재에는 그 바탕이 가정일 수밖에 없을진대

이제 가정은 갈등하고 다음은 이 시대의 방식대로 그 해소과정이 그려지지요.

아버지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체할 질서는 보이지 않고,

가정은 혼외정사와 출생의 비밀이 얽히는 곳이거나,

불륜과 배신, 살인미수가 창궐하는 범죄의 배경이 되고,

이복남매일지도 모를 아슬아슬한 연인이 등장합니다.

그러다 찾은 해법은

악역의 대척점에 선 착한 가부장 혹은 가부장에 준하는 그늘로 들어가

결국 또 진부하게 가부장을 논하거나

난치병의 악역을 동정하는 걸로 찾아지지요.

그 과정을

집을 떠나 홀로 생활하는 젊은이가,

혹은 멀리 가족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돈 버는 아비가

아니면 아직 가족들이 들어오지 않은 텅 빈 거실에서 어머니가

것도 아니면 맞벌이 부모가 돌아오지 않은 집에서 아이가

그리고 어쩌다 모인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서로 멋쩍어하다가 튼 TV에서

이 시대 사람들이 만나고 있는 거지요.

이렇게 자극과 감동을 동시에 바라며 드라마들이 막장으로 갈 때 이 거장은

우리의 가족공동체를 다른 방식으로 탐구합니다,

새 시대 새로운 갈등을 어떻게 포용하고 화합하여 지속가능토록 할 것인지.

그 방식은 새 시대의 갈등을 부정하지 않고 끌어안고서,

그렇다고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인생과 욕망 또한 부정하지 않고,

현재의 너덜거리는 가족공동체를 어떻게 보완하고 치유해서 시대의 변화에 대처할까를

깊이 고민하는 거지요.

그리하여 신세대 딸과 며느리, 장애아동, 가정 폭력 희생자, 동성애 문제는

그렇게 가족 안으로 자연스레 진입합니다.

그러나, 거장 홀로 가족공동체를 지켜나가기는 힘이 부치지요.

다시 그러나, 거장이 그려내는 것들은 대안의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거장은 또 거장이 되는 게지요.

자신의 자리에서 일가를 이루는 것,

그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 셈입니다.

이 시대 ‘그러함(사는 게 그런 거지?)’을

(이럴 때 ‘그렇다’라는 말은 부정적인 모든 상황을 함의한 말이지 않던지)

그렇지 않도록 할 수 있는 힘,

그게 내(모든 이들의) 걸음일 수 있을지니.

 

사람 하나 떠났습니다.

또 누군가 왔을 겝니다.

그리고 우리는 살아가지요, 죽기 전까지.

뭔가를 해야지요, 대단한 무엇이 아니어도.

그게 사는 일이므로.

자, 다음 걸음 걷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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