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11.달날. 맑음

조회 수 1037 추천 수 0 2013.02.21 08:56:51

 

 

올해 유달리 날이 추워 그랬던 걸까요.

난로 연통을 또 갈았습니다.

한철을 지나갈 수 있는데 말이지요.

지난번엔 가마솥방에, 오늘은 교무실에,

부분적이긴 해도.

 

결국 꽝꽝 얼어붙은 우리들의 설은 고립 속에 보냈습니다.

장을 보지도 못하고,

들리겠다는 이들 혹은 여기서 설을 쇠겠다는 이들도 걸음을 막아

단촐하게 식구들하고만 보냈습니다.

소사아저씨도 올해는 대해리를 지키셨네요.

발 묶인 덕에 책 이어읽기 좋았습니다,

온 식구가 세 권의 책을 같이 읽고 얘기 나누고.

 

있는 것들로 어찌 어찌 해먹으며 설을 쇴습니다.

하기야 김치 있고 장 있고 쌀 있으면 되었지요.

그래도 밥상에 용케 여러 반찬들이 올랐네요.

다만 주전부리거리 없다며 조금 아쉬워했으나 그것도 잠시,

스폰지케잌을 시작으로 머랭쿠키, 식빵,

그리고 오늘은 애플파이.

마침 사과잼 있기.

그 사과잼엔 레몬즙도 계피가루도 들었지요.

딱 파이용입니다.

박력분 없으니 중력분으로,

버터 없으니 마가린으로,

반죽해서 냉장실에서 40분여,

그 사이 마가린 녹이고 잼을 올려 거기 전분을 섞었습니다.

반죽의 반을 밀어 파이 도우 만들고 포크로 구멍 송송송,

거기 사과잼(사과필러라고 하는) 얹고,

나머지 반죽 밀어 끈을 만들어 바구니 모양으로 얹고,

그리고 계란물 바르고 다시 냉장실에 30여 분 넣어두었다가 꺼내

40분간 구웠습니다.

“와아!”

모양도 맛도 반응 완전 좋았음.

먹을 게 없는 사흘을 그렇게 오븐을 안고 보냈네요.

 

아이는 연휴 마지막을 교무실을 몇 시간이나 정리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혼자 봄이 먼저 온 게지요.

모든 전기제품들을 끌어내

멀쩡해도 안 쓰이며 자리만 차지하는 것들 이젠 치워내자고,

그래야 새 마음도 일할 마음도 든다고 그리 치우고 있습니다,

엄두를 못 내는 어미를 대신해.

자주 부모를 좌절시키는 아이지만

한편 또 자주 고마운 그입니다.

“어머니, 이것 보세요!”

2003년 세 해 동안 일곱 개 나라를 돌다 들어오던 그 여름

마지막 러시아에서 돌아오며 남겨졌던 루블 한 뭉치의 봉투가

저 어디서 나오기도 했더랍니다.

당시엔 국내 외환은행에서 취급을 않았는데,

그래서 달러를 가지고 러시아 들어가서야 루블로 환전을 했더랬지요,

지금은 원화로 바꿀 수 있으려나요.

그때로부터 꼭 십 년이 흘렀군요.

물꼬의 그 세월을 돌아봅니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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