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들모임이고, 대보름제입니다.

설은 나가 쇠도 보름은 집에서 쇠라 하지요.

객지 나갔다 설에 부득이 집에 돌아오지 못할 일이 생겼더라도

보름 정도면 그 사정을 해결하고 돌아올 수 있지 않겠느냐는 헤아림이 담겼을 겝니다.

설에 해를 시작한다지만 농사는 보름을 지나며 비로소 시작됩니다.

농사를 챙기기 위해서라도 집에 와야 하는 시기인 게지요.

일 년 동안 세시풍속행사가 189건,

그 중 정월 한 달이 세배며 설빔이며 78건으로서 전체의 거의 절반,

그 가운데 대보름날 하루에 관계된 세시풍속 항목이 무려 40여건으로

정월 전체의 반수를 넘고, 1년 365일에서도 이 하루의 행사가 5분의 1이 넘는 비중.

대보름이 그리 큰 날입니다요.

 

갑자기 쿵짝 모인 빈들모임입니다.

어느 해 겨울의 빈들모임에 왔던 한 가정이

다시 걸음 한다 연락을 했더랬고,

그런데 인교샘이 못 오게 됐고,

허니 한 가정으로는 겨울 사흘을 보내기는 너무 스산하다 싶어

아무래도 그냥 지나가겠다 했는데,

새끼일꾼 연규가 온다 하고 연규 선배가 온다 하고

그러다 그 동기들이 오게 되고

더하여 몇 품앗이샘들 오게 되고...

은희샘은 오빠 면회로, 희중샘은 모꼬지로 함께 하지 못했지만

아리샘이 밤늦게, 휘령이 끝날 잠깐이라도 걸음해보겠다 연락 해왔지요.

 

점심을 먹고 불가에서 은행을 구워먹고 매실효소를 마시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수다부터 우리들의 빈들모임이 시작됩니다.

오후엔 볏가릿대를 세우기로 합니다.

정월 대보름에 짚이나 헝겊에 갖가지 곡식을 싸서 장대에 매단 다음,

우물이나 마당 또는 외양간 옆에 높다랗게 세워놓고 풍요를 기원하는 풍속,

집집마다 하기도 하지만 마을 단위로 하기도 하는.

먼저 새끼를 꼬아야지요.

목공실에 퍼질러 앉아 새끼들을 꼽니다.

“저, 새끼도 물꼬 와서 처음 꼬아보고 쥐불놀이도 처음 해보고...”

물꼬 아이로 보낸 시간이 무려 십년,

초등 2년이던 수현이 낼모레 12학년입니다.

몇 차례의 실패 뒤 제법 새끼줄이 되어갑니다.

그때 목공실 건너편 김장독에서 김치를 꺼내다

찢어 한 입씩 내미니 제비새끼들처럼 먹고 또 먹고.

마음 참 따숴집디다, 아이구, 우리 새끼들, 싶은.

 

큰 대나무 끝에 무성한 입을 달아매고

다시 새끼줄을 세 갈래로 엮어 세운 뒤

삼각뿔모양으로 팽팽이 늘였습니다.

이 작은 일에도 수학적 지식이 필요하게 되지요.

세 점이 원 위에 놓여야 한단 말입니다, 하하.

다음, 소원문을 써서 매달았습니다.

 

새참으로 애플파이를 냈지요.

“옛날에... 대보름에 개 밥 안 줬어요.”

파이를 먹다 소사아저씨 그럽니다.

아, 그래요, 그래요, 그래서 ‘개 보름 쇠듯’이란 말이 있었던 게지요.

무척 배가 고프거나 처지가 처량할 때

잘 먹고 지내야 할 날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무의미하게 지낼 때 하는 말.

정월 대보름에 개를 먹이면 개에게 파리가 꾀거나 파리해진다고 굶겼다지요.

우리 장순이 자주 쇠파리 끼는데 정말 굶겨보면 나아질까요...

 

오곡밥과 나물밥으로 저녁을 먹고

불 가에서 밥상머리 공연이 이어집니다.

올해 성악과를 입학한 주석이는 이탈리아 가곡 ‘고뇌’를

8학년 하다는 기타를 연주하며 ‘사랑은 은하수 다방에서’를 불렀습니다.

곡주도 한 잔.

 

오늘밤은 ‘보름새기’.

정월대보름 전야제인 게지요.

전남에서는 열나흗날 저녁부터 보름날이 밝아야 운수가 좋다고

집안이 환해지도록 불을 켜놓고, 배를 가진 사람은 배에도 불을 켜놓았다 합니다.

경기도에도 열나흗날 밤 제야(除夜)와 같이 밤을 새우는 풍속이 있었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잠 안자기 내기를 하는 곳도 있었다지요.

충북에서는 열나흗날 밤 ‘보름새기’를 하는 데가 여러 곳,

바로 그 보름새기를 합니다.

마당에 장작불 피워 놀다가 그 불씨로 쥐불놀이도 하고

장작더미 안으로 소원문을 태우기도 하였네요.

 

된장집에 올망졸망 모였습니다.

숙제검사!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를 모두에게 들려주지요.

서현샘은 라오스에서 보낸 일 년을 돌아보며

우리가 누리고 사는 것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 것인가 얘기합니다.

수현이는 물꼬하고 인연이 자신의 삶에 어떻게 깊었는가,

그것이 자신의 길을 어떻게 인도하였는가를 들려주었습니다.

윤지 역시 그러했군요.

연규는 자신의 삶에 다가온 지침 같은 한편의 글을 읽었고,

주석은 책 하나가 자신의 삶에 와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었는가를,

그리고 하다는 시를 전해주었습니다.

보름밤이 참말 곱게 젖어갑니다.

이러다 정말 밤을 꼴딱 넘겠습니다.

아, 남도에서 집안 어른이 보내온 가볍고 따순 이불,

드디어 개시했네요, 하하.

아이들이 건너가고 서현샘이랑 불을 끄고

달빛 넘어오는 방에서 또 한참을 도란거렸습니다.

참 고운 그이입니다.

 

오늘 신발 한 켤레 선물을 받았습니다.

제 생애 가장 좋은 신발이지 싶어요.

아이의 초등 4학년 때 외할머니가 아이에게 사주었던 부츠,

아이 발 금세 자라 그 겨울 두어 차례 신었던 게 전부,

그걸 어미가 물려받아 겨울마다 신어왔지요, 어느새 다섯 해.

어떻게 한번 만났던 분이 눈대중으로 가늠하고 발에 꼭 맞는 신발을 보내셨을까요.

고맙습니다.

한편, ‘그런 눈과 마음이 난 늘 부족하다’ 반성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3306 2013년 2월 빈들모임 갈무리글(2/23~24) 옥영경 2013-03-04 1049
3305 2월 빈들 닫는 날, 2013. 2.24.해날. 맑음 옥영경 2013-03-04 935
» 2월 빈들 여는 날, 2013. 2.23.흙날. 맑음 옥영경 2013-03-04 1080
3303 2013. 2.22.쇠날. 종일 눈 옥영경 2013-03-04 805
3302 2013. 2.21.나무날. 맑음, 바람 많은 옥영경 2013-03-04 858
3301 2013. 2.20.물날. 맑음, 바람 좀 옥영경 2013-03-04 917
3300 2013. 2.19.불날. 맑음 옥영경 2013-03-04 972
3299 2013. 2.18.달날. 우수, 흐림 옥영경 2013-03-04 968
3298 2013. 2.17.해날. 흐림 옥영경 2013-03-04 744
3297 2013. 2.16.흙날. 맑음 옥영경 2013-03-04 796
3296 2013. 2.15.쇠날. 맑되 바람 좀 옥영경 2013-03-01 862
3295 2013. 2.14.나무날. 볕 좋은 옥영경 2013-03-01 774
3294 2013. 2.13.물날. 맑음 옥영경 2013-03-01 741
3293 2013. 2.12.불날. 함박눈 내린 오전 옥영경 2013-03-01 839
3292 2013. 2.11.달날. 맑음 옥영경 2013-02-21 1039
3291 2013. 2.10.해날. 흐림 옥영경 2013-02-21 857
3290 2013. 2. 9.흙날. 맑음 옥영경 2013-02-21 1049
3289 2013. 2. 8.쇠날. 맑음 옥영경 2013-02-21 901
3288 2013. 2. 7.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3-02-21 927
3287 2013. 2. 6.물날. 눈 옥영경 2013-02-21 88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