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아직 제법 찬바람, 그래도 봄바람.
종일 바람입니다.
“바람이 많네요...”
마을 어르신 한 분 지나십니다.
“원래 봄에는 바람 많잖어.”
아, 그렇군, 새삼스럽습니다.
살며 얼마나 많은 봄을 지났는데도 처음 안 듯합니다.
세상 끝 날까지 적지 않은 일들이 자주 이리 생경하겠다 싶데요.
낮에 돌아다니느라 지친 봄바람은
이 밤 또 정신없이 잠에 들었나 봅니다.
이장님 댁을 얼마나 뻔질나게 드나드는 요즘인지,
아이랑 저녁마다 아주 출퇴근입니다.
오늘은 등기이전관련 문중 서류를 구비하기 위해
문중회의록에서부터 문중 사람들 도장을 찍는 일이며를 들고 갑니다.
간 걸음으로 냉이를 같이 다듬으며 이야기가 길어집니다.
곁에 살아도 이리 여러 날을 드나들어 본 적이 없지요.
마을이야기도 듣고 댁의 가정사도 듣게 됩니다.
“아, 도루묵 먹나?”
황간의 누이 댁에서 한 가득 나눠줘 얼려두셨더랍니다.
“저이는 강원도 인제에서 군생활하며 질리도록 먹었다고 안 먹는다 캐.”
“저희 소사아저씨 좋아하겠다.”
“알이 꽉 들어찼어.”
“김치 깔고 지져내면 되겠다.”
한 덩어리를 얻어 오지요.
오후, 천안 태조산의 각원사를 다녀옵니다.
수행모임이 그곳에서 잠시 있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마주하는 건 산도 사람도 풍광도 아닌
바로 자신이지요.
무엇이 그 산에서 기다리나 싶더니,
결국 깊이 자신과 대면합니다.
문득 마음이 트이지 못하고 인색하며 치사한 내 모습에 얼굴을 들 수가 없습디다.
많은 모습들 가운데 하필 그런 순간들이 더 강렬하지요.
고마운 시간.
알면 나아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