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17.물날. 흐릿한 하늘

조회 수 868 추천 수 0 2013.04.29 10:15:15

 

달골 들머리, 2007년학년도를 시작하며 심었던 벚나무에

꽃 만발입니다.

“나 크듯이 크네.”

심었던 아이는 자주 그리 감탄하였댔지요.

세상이 다 환해집니다,

흐린 날이나 불 밝힌 것만 같이.

조팝도 터지기 시작하고,

사과꽃도 툭툭 입 벌리고 있는 봄, 봄, 봄날입니다.

 

“다른 건 다 하겠는데요, 아침수행은 빼주시면 안돼요?”

그래도 결국 하지요, 해건지기.

전통수련과 대배와 명상이 이어집니다.

“행복도 힘이 있어야 해.

 이만도 안 하고 행복할라면 도둑놈이지!”

 

오전수업; 자기 삶 들여다보기.

내게 있었던 시간들 말하기쯤 되겠네요.

시작은 정리에서 출발하니까.

“호미로 풀 뽑듯이 아주 파내요, 파내.”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제 이야기들을 꺼내놓습니다.

 

점심, 아이들은 동네 심부름을 갔습니다.

이곳에 사는 아이가 하는 마을 반장 일을 맡아 하니

저들이 같이 하지요.

아래뜸 집을 다 돌며 군에서 나온 것들 전하고

얼른 뛰어왔습디다.

“기동력 있어 좋다야!”

 

아이들이 없다면 이 세상이 어땠을까요.

아이들이 주는 감동이 우리 삶을 밀고 가고는 하지요.

“이거 들고 갈까요?”

한 아이는 헤아리고 살피고 배려하는 마음이 큽니다.

눈치가 아니라 아부가 아니라 아이의 심성이 그렇습디다.

처음엔 그 감동이 아이에 대한 기대치가 낮은 까닭인 줄 알았는데

아니데요, 훼손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주는 감동입디다.

오늘은 한 아이가 씻어놓은 컵을 갖다가 소독기장에 넣습디다.

눈치를 보고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성품이 그러함을 알겠습디다.

이런 사람의 마음이 사람을 감동시키지요.

부추를 다듬을 때도 돌나물을 다듬을 때도 마음 좋습디다.

자연스레 다가와 마주앉아서는 ‘그냥’ 하더이다.

여러 나이대들이 모이는 곳이라 나이로 견주게 될 때가 잦습니다.

대학을 다니는 나이여도 그런 걸 볼 줄 모르는 사람도 숱했더랬습니다.

그런 거(앞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거요) 보면 같이 ‘하는’ 겁니다,

남의 일이거니 하지 않고.

 

오후에는 아이들과 부추밭을 맸습니다,

소사아저씨는 간 밭에 열무와 아욱과 봄배추 씨앗을 놓고.

바람 많았던 어제 쓰러졌던 간장집 처마도

새로 기둥 세웠습니다.

참으로 사과파이 구워냈지요.

부추 잘라와 부침개 놓고, 돌나물로 초무침도 얹은 저녁 밥상이었네요...

 

어둠이 내릴 녘,

널린 자잘한 나무들을 마당가에서 태우기로 합니다.

며칠 농기계집 정리를 하며

거기 또 쓰레기꾸러미들이 쑤셔져 있었던 것들도 내놓았지요.

구석구석 얼마나 그런 곳이 많을 것인가요,

보긴 멀쩡해도 들여다보면 정리 없이 그저 치워져있는 그런 것들.

내 삶은 그렇지 않은가, 반성합니다.

한참 전부터 움직이지 간장집 굴뚝배출구도 지붕에 올라 들여다보았는데,

배선이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고

밝은 날 간장집 전선을 모두 손 좀 보기로 했답니다.

 

학부모의 편지 한 통.

아이들이 부쩍 자란 이야기와

늦둥이 올 여름은 빠지지 않고 마지막 계자를 오고자 한다는 소식입니다.

‘...

제 전공이 특수교육이라 통합교육, 정서장애학생들 교육, 위탁교육까지 하시는 것을 보고

참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있는 대학의 특수교육전공 학생들 중에서도

장애가 있는 학생들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요즈음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또 저도 같이 힘이 들어서.....

부쩍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건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늘 씩씩하신 옥선생님,

건강하시고 여름에 뵙겠습니다.’

아, 마음 참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커나가는 이야기만큼 신명나는 이야기가 있을까요.

그것도 너무, 잘, 제 몫 하고 산다 싶으면

덩달아 얼마나 신이 나는지.

큰 아이는 미국 유학 중이고

작은 아이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본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답디다.

‘...

저는, 늘 씩씩하진 않지만 흔들리는 일이 덜하긴 한 듯합니다요, 하하.

함자를 또박또박 발음하면서도 기분 좋아지는 저녁이네요.

반갑기 더합니다.

아이들로 어른들이 좋은 벗이 되기도 한 물꼬였더랍니다.

나중엔 애들은 어디로 가버리고 벗들이 남더라니까요.

...’

오랜 인연들에 고맙고 감사합니다.

 

“여기서는 잠이 잘 와요...”

아이 하나, 밤이 무섭다며도 잘 잔다니 고맙습니다.

여기서는 서산보다 밤이 더 어둡다지요.

보육원에서 여럿이 자니까 수선스러움 없잖겠지요.

물꼬에서는 방을 하나 차지하고 잡니다.

간밤엔 거실의 큰 인형 둘을 데리고 같이 자데요.

 

모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3364 2013. 4.23.불날. 비 조금 조금 조금 옥영경 2013-05-05 764
3363 2013. 4.22.달날. 맑음 옥영경 2013-05-05 780
3362 2013. 4.21.해날. 맑음 옥영경 2013-05-05 848
3361 2013. 4.20.흙날. 눈 눈 눈, 그리고 비 옥영경 2013-04-29 849
3360 2013. 4.19.쇠날. 맑음 옥영경 2013-04-29 807
3359 2013. 4.18.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3-04-29 797
» 2013. 4.17.물날. 흐릿한 하늘 옥영경 2013-04-29 868
3357 2013. 4.16.불날. 한낮 25도가 넘었다는 옥영경 2013-04-25 866
3356 2013. 4.15.달날. 소나기처럼 다녀간 비 옥영경 2013-04-25 804
3355 2013. 4.14.해날. 흐리다 차차 맑음 옥영경 2013-04-25 820
3354 2013. 4.13.흙날. 맑음 옥영경 2013-04-25 792
3353 2013. 4.12.쇠날. 맑음 옥영경 2013-04-19 858
3352 2013. 4.11.나무날. 눈 쌓인 아침 옥영경 2013-04-19 936
3351 2013. 4.10.물날. 서설(瑞雪) 옥영경 2013-04-19 834
3350 2013. 4. 9.불날. 맑으나 바람 센 옥영경 2013-04-19 768
3349 2013. 4. 8.달날. 흐리고 바람 많았다 옥영경 2013-04-19 786
3348 2013. 4. 7.해날. 싸락눈 옥영경 2013-04-19 797
3347 2013. 4. 6.흙날. 봄비 옥영경 2013-04-19 879
3346 2013. 4. 5.쇠날.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 옥영경 2013-04-19 871
3345 2013. 4. 4.나무날. 맑음 옥영경 2013-04-19 76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