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21.해날. 맑음

조회 수 847 추천 수 0 2013.05.05 00:31:42

 

봄눈 녹듯, 이라는 말 있지요.

그래요, 봄눈이 그리 녹았습니다,

그리 두텁게 쌓이고도.

봄 아침 햇살 한 보시기에 그리 다 흩어졌습니다.

그 위로 잔잔히 부는 봄바람.

 

“옥샘, 여기가 멍들고 아파요.”

“어데 부딪힌 모양이네.”

아이에게 약을 바르고 마사지를 해주면서,

이런 순간에도 아이들과 사는 시간에 대한 감동이 옵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일은 돌보는 자의 행운이다마다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이 보잘 것 없는 생도 쓰일 수 있어.

 

해날, 아이들이 궁궁하겠습니다.

식빵을 굽지요.

사내 녀석들 팔뚝 힘이 좋아 반죽이 가뿐합니다.

집에서 만들어 먹어보는 빵이 처음들이라지요,

쿠키와 빵을 굽던 어제 말입니다.

식빵은 발효 시간이 길어 오늘로 넘어왔던 게지요.

이 산골에서도 이런 걸 해서 신기하다 했습니다.

요새 같이 넘치는 ‘체험’의 교육들에서

아직 그런 영역이 있다하니 반갑지요.

 

위탁교육을 들어와 있는 아이 하나는

생전 책이라고는 재미없는 거라는데,

심심하다 심심하다 지쳐

그예, 드디어 책을 한 권씩 보기 시작합니다.

tv와 인터넷이 닫힌 세계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책을 만나고 있습니다.

 

명쾌함을 경계합니다, 자주.

아니 사실은 믿지 않는다고 해야 더 진실에 가깝겠습니다.

삶이 그리 단순하고 일목요연하고 명쾌하더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앞뒤가 맞는 말보다 그렇지 않을 때

역설적이게도 더 신뢰가 느껴지고는 합니다.

오늘 아이 하나는 너무나 명쾌하게 자기 어린 날을 말했습니다,

어머니와 쌍둥이 형제와 다른 형제들에 대해.

그런데 너무나 아귀가 잘 맞아서 너무나 사실적이었고,

그래서 외려 의구심이 생겼지요.

결론은, 그의 이야기는 그 아이의 머리 안에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아이가 오고, 치료에 들어가니 그의 관련 모든 서류도 함께 와 있지요.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 아이의 바람이 그 아이 안에서 사실로 만들어진 것.

그 아이는 어머니가 만나고 싶은 것이고

쌍둥이였으면 하는 것이고,

다른 형제자매가 있었으면 하는 거지요.

때로 공상허언은 우리 모두에게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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