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22.달날. 맑음

조회 수 778 추천 수 0 2013.05.05 00:32:26

 

날 참 좋습니다, 고맙게도.

어제까지 춥기도 춥더니...

 

늘 돌봄을 받던 이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되면

그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어른스럽다는 걸

마치 놀랍다는 양 입을 벌리게 되지요.

그리고 그는 돌봄을 받을 때보다 돌보며 갖게 된 의젓함에

스스로 대견해하고 여태 알아왔던 자기 생에서 한걸음 더 걷게 됩니다.

오늘 아이 하나가 아팠고,

다른 아이가 그를 돌보았습니다.

아침밥을 챙겨주고,

아픈 아이가 잘 있는가 살피러 달골을 오르내리고,

저녁엔 누워있는 아이 곁에서 (‘다만’일지라도) 앉아 있었더랍니다.

어른이 비운 공간에서 어른 노릇하며

아이가 또 한 발짝 성장의 세계로 다가갔을 테지요.

 

오후, 아이 하나는 짐승들 먹이는 일을 도왔다 합니다.

개밥을 챙겨주고 닭밥을 먹이고

닭장 옆 밭의 풀을 매고

사람들 새참도 챙겼다지요.

그렇게 낯선 공간에서 제 흐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두부부침을 하고 혼자 멸치도 볶았다지요.

“어떻게 그걸 할 생각을 했어?”

“옥샘이 하는 거 보고...”

유심히 보고 그리 따라 했다나요.

“그런데요, 두부가 맛이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소금을 찍어먹을 생각을 했는데,

젊은 할아버지가 간장을 내놓았다나요.

 

새벽, 마을 사람들과 관광버스에 올라 대해리를 나섰습니다.

아이 하나 밤새 아파서 잠을 설쳤더랬지요.

한방약을 챙겨주고 찬물로 머리 열을 식혔는데,

아직 누웠는 걸 보고 나서서 마음이 좀 짠하였네요.

다양한 나이대, 그렇게 말해도 40대가 겨우 하나,

50대에서 80대가,

그래도 50대는 젊은 사람으로, 80대나 되어야 나이든 사람이라고 지칭되는,

아, 고속도로에 올려진 순간부터 통영에 닿을 때까지,

그리고 통영을 떠나 마을로 돌아올 때까지

차는 음악소리로 터질 듯 불룩불룩 했고

서있기도 쉽지 않은 달리는 버스 통로에서

아, 정말 사람들은 쉬지 않고 흔들어댔습니다, 정말, 정말로, 진짜 그럽디다.

그 광경이 신기하고 또 신기해서 연신 손뼉을 치는 속에

사람들과의 거리는 새로운 길이가 되었고(더 가깝게 혹은 더 두텁게?).

(1996년 가을부터 폐교된 현재의 물꼬를 임대해 대해리를 드나들기 시작했고,

2001년 겨울 공동체식구들이 아주 이사를 들어왔으며,

그해 서울을 떠나 2003년 일곱 개 나라 공동체를 돌다 마지막 나라 러시아에서 돌아와

이적지 이 마을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과 관광을 떠난 하루였지요.)

한해 한번 그렇게 몸을 흔들고

다시 한 해를 산마을 사람들은 살아가는 거디었습니다...

 

한산도 제승당을 걸었습니다.

당연히(?) 김훈의 <칼의 노래>를 되짚었고,

동백꽃 그늘 아래서 미당의 시와 허수경의 시와 최영미의 시를 생각했고,

이미자의 노래와 송창식의 노래를 흥얼거렸지요.

그리고 한 벗에게 남해안 바다 소식을 전했습니다.

꽃그늘에서 네 생각했다고 말했지만

눈을 뜨는 순간부터 아니, 자주 벗을 생각하지만,

그저 문득 생각났노라 했습니다.

우리는 때로 그리운 이를 그리 그리워하다가

무심한 듯한 태도로 그저 이 순간 네 생각했다 문자 한 줄 보내고는 하지요.

아니면 반대로 생전 생각도 않다가 어느 한 순간의 생각으로

자주 혹은 늘 그대 생각하노라 문자 한 줄 보내기도 할 겝니다.

그러니까 사실이라는 것은 자주 사실이 아니기도 하지요.

또는 사실은 자주 핑계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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