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건도 하여라, 이 밤!

 

‘풀이랑’.

여느 빈들과 달리 아침수행 없이 시작하는 아침.

풀이랑 놀고 뽑고 공부하는 것은 아이들만 하고,

어른들은 세 패로 나뉘어

한 패는 고래방 청소, 다른 패는 교무실에서, 또 다른 패는 부엌에서

다시 ‘땀이랑’ 시간이었네요.

 

휘령샘은 정작 시 찰랑거리는 밤을 두고 나가야했습니다.

그저 일손이라도 보태는 마음으로만도 충분히 행복하다며

다시 먼 길을 돌아갔지요,

잠도 제대로 못자고.

늘 고맙습니다.

특수교육현장에서 오래 함께 어깨 겯고 걸을 수 있기를.

아리샘이 같이 나가서 장볼 것들 챙겨오고,

떡과 후식용 쿠키들도 실어왔더랬답니다.

 

“뭘 밖에서 먹어? 된장찌개 놓고, 있는 반찬에 먹음 되지.”

역에서 이생진 선생님과 합류한 승엽샘, 정제샘이

점심을 먹고 들어들 오시겠다 하여 어여 들어오십사 했지요.

아, 방송연출가 김병수샘도.

지난 가을 우이도 여행을 같이 한 이들이기도 합니다, 이생진 선생님이랑.

식사들을 하시고 달골에서 잠시 쉰 뒤 저녁 밥상에 모이기로 하지요.

이생진 선생님은 어제 인사동에서 늦도록 시낭송이 있었습니다.

달마다 마지막 주 쇠날이면 인사동이 시로 술렁이지요.

음, 술로도 술렁일 테구요...

어제 그 낭송회가 몇 주년이던가를 기념해서 더 늦고 왁자한 밤이었을 것을

새벽같이 기차타고 오셨더랍니다, 우리 선생님!

 

오후, 다시 ‘땀이랑 물이랑’.

저녁밥상에 주로 사람들이 당도할 것입니다.

50명분입니다.

비빔밥에 오이채국을 내리라 하지요.

거기 샐러드와 반찬 몇 가지, 그리고 부침개도.

명희님과 진영님이 일을 아주, 아주 잘하십니다.

정말 우렁각시들처럼 뒤에서 바짝 잘 움직여주셨댔지요.

밤에 쓸 안주도 미리 마련.

 

한편, 운동장에 텐트도 여러 채 쳐졌습니다.

산을 타고 다니는 무리들도 시에 젖으려 왔지요.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들도 모자라

후원금 봉투를 내밀기도 했더랍니다.

고맙습니다.

선배들의 그 그늘이 늘 물꼬를 또 밀고 가는 한 바퀴이지요.

 

저녁밥상.

이웃마을 매곡에서, 영동읍내에서,

멀리 서울에서 지리산에서 거제도에서 대구에서,

정말 곳곳에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뱃속 아이에서부터 여든넷 노시인에 이르기까지,

가족에서부터 홀로,

그리고 물꼬의 품앗이 샘들.

 

7시 고래방, 우리들의 마음이 우듬지 같았던 밤...

이생진 선생님의 살아오신 이야기와 시와

현승엽샘의 기타와 노래와...

그 감동은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만 아는 걸로! 헤헤.

그리고 뒤풀이가 벌어진 가마솥방에서

날고 기는 노래와 시와 피아노,

이어 마당에서 상찬샘과 그 일당들이 피워준 불에

모다 장작놀이.

불이 사그라드는 새벽녘에야 하나둘 잠자리로 사라졌지요.

그 감동도 그 자리를 만든 이들만 나누는 걸로!

 

빠른 손을 믿고 늘 닥쳐서 일을 하는 부류입니다.

‘미리’ 하는 일이라니... 그리 잘 안하게 됩니다.

다음 일들이 오는 기세에 밀린 탓도 있지요.

낡고 넓은 공간을 건사하며 사는 삶이기도 해서 또 그럴 겝니다.

하지만 이번 참엔 작년에 독일과 스웨덴을 다녀와 급히 했던 일정들과 달리

일찌감치 차곡차곡 해온 준비에다

빈들 앞두고도 여럿 들어와 같이 준비하는 손들로,

사람 오십 먹일 일 일도 아니라지만 얼마나 여유롭던지요.

나이 드니 닥쳐서 하는 일은 아무래도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

그럴 땐 미리 하면 낫고 말구요.

 

번번이 메모한 일들을 다 못하고 사람들을 맞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거개 다 했더랬네요.

손이 있어 그랬겠습니다.

미리 준비해서도 그렇겠습니다.

계자 준비이려니 하고도 했습니다.

장마 준비이려니도 하고.

해마다 6월 빈들모임은 이렇게 해도 좋으리라 싶습니다.

 

‘夜단법석’.

“내년에도 죽지 않겠습니다!”

모두 내년에 또 모이자 하니

이생진 선생님의 답변이 그러하셨습니다.

대구의 한 화가는 퍼포먼스로 찬조출연을 하겠다 약조했지요.

내년을 기약합니다.

하지만 규모는 작년 같은 서른이 더 오롯한 감동이 있겠다 싶은...

 

‘시인 이생진 선생님이 있는 산골 초여름 밤’.

흥건하기도 흥건했던 시간...

함께 해주신 모다 고맙습니다.

단란하다기엔 좀 많았던 오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었네요.

이 현란한 시대에도 시를 쓰고 읽고 듣는 이들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먼 길 한달음에 달려온 그 걸음들은 또 얼마나 고맙던지요.

무엇보다 이 시대 우리가 바라보고 갈 어르신을 가졌음은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다, 모다 고맙습니다.

 

지나가는 이야기 하나.

선배가 아직 오지 않은 벗이랑 통화를 하는 곁에 있었습니다.

“은식이형 못 온대? 안 오면 죽여버린다 그래.”

너무 기다렸던 선배라 그만큼의 아쉬움이 강하게 그리 표현되었을 테지요.

그런데, 그걸 말로 처음, 아마도 태어나 처음인 듯, 해보았습니다.

그악스러워지는 말...

직접이 아니라 통화를 하고 있던 다른 선배를 통해 하긴 했지만.

세상이 그악스러워지니 내 말도 그리 되나보다 움찔합디다.

내 잘못 아니다 뭐 그런 말은 다 아니고.

세상이 그악스러워지니 하늘도 하루에 몇 번씩 요란을 치며 뒤챈다 싶더니

내 삶도 그리 되는가 퍼뜩 정신이 듭디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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