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비 무서운 기세로 내립니다.
상주 모동의 포도밭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도록 종일 손 보태마 했지요.
넘들 포도봉지 싸는데 아직 순도 못 자르고 있다는 밭,
얼마 전 굴삭기로 대나무 뿌리를 얻으며 품앗이 하기로 했던 것.
“좀 있어 봅시다.”
새벽, 전화가 오고갔지요.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잠시 비그을 적에야 나섰지요.
다시 비 추적이는 황간.
“할 수 있겠어요?”
비 다시 흩뿌리고, 밭 주인은 어두운 얼굴로 묻습니다.
“가 보죠.
그러다 못하면 또 마는 거지.”
이왕 나선 걸음인데 뭐라도 좀 하고 오면 좋을 테지요.
다행히 상주 모동의 포도밭에 도착하자 비가 가늘어졌습니다.
소사아저씨와 밭주인과 비옷을 입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헌데, 비는, 도대체 그칠 생각은 둘째 치고 자꾸자꾸 굵어지기만 했지요.
그런데도, 이제 그만 가시죠,
그 말을 못하는 주인의 심정을 헤아려
비옷 안으로 옷들이, 속옷까지 죄 철벅거리도록 손을 놀렸더랍니다.
야속하게도 비는 점심밥을 먹을 무렵에서야 잠시 멈췄는데,
밭에 다시 드니 굵어지고...
물꼬 일이 아니어 그랬던 걸까요,
일하며 이리 날씨가 안받쳐주는 건 생전 처음이었던 듯합니다.
일 끝내고 밭에서 나오니 석양 보여주는 하늘이라니...
비 그리 내리고, 온몸이 물 먹은 솜이 되어 어둡도록 일을 하고 있으니,
비장함 비스무레 한 것이 듭디다.
곧 여름 계자 일정이 시작되지요.
살아가며 끊임없이 만나는 날카로운 칼날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끊임없이 들쑤시는 상처에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일,
그리하여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삶의 품격을 지켜가도록 돕기 위해
이 여름은 아이들과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지요.
결국 그것은 제 자신을 구원하는 길이기도 할 터.
음... 쓰고 보니 좀 무거워졌군요, 하하.
순전히 창대비 속의 노동 탓.
“왜 이렇게 안보여?”
이곳저곳 밭에 드는 사이,
마을에서 찾습니다.
의논할 일이 있다 이장님 부르셔서 밤에 건너갔지요.
이 산마을 부녀회장 일을 맡은 지도 석 달이 넘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