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지났으니 풀이야 더 자라겠는지요.
이제 그것들을 깎는 게 가을일이겠습니다.
산마을을 나갔다가 돌아오면 학교를 둘러보는 게 먼저이지만
잠시 앉았다 꼭 숲을 건너다보게 됩니다.
나무들을 보며 요새 하는 생각;
둥근 나무이나 거기에도 앞과 뒤가 있습니다.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옆모습이 있고 앞모습이 있습니다.
어린 날 그림을 그리며 나무에 눈과 입과 귀를 달아준 적이 있습니다.
그땐 그저 상상화이거니 했지요.
그런데 나무 앞에 서니
정말 나무가 내 쪽도 보고 저쪽도 보고 뒤도 보고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앞과 뒤가 있습니다!
집에 안마기를 한 대 들였습니다.
기락샘이 챙겼습니다.
아이가 같이 사는 동안 필요 없던 것입니다.
한 지붕 아래 사람 없으니 젤 아쉬운 게 그거.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어떠실까,
그찮아도 늘 짠한 마음이 더 애잔해집니다.
안마기 있으니 집이 더욱 어여 돌아오고픈 곳이 되는 듯. 하하.
사적인 아주 사적인 이야기.
가끔 저녁답에 듣는 클래식 방송 하나에서
오늘은 프로그램 문을 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낱말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하다’라는 말.
저희 집 아이 이름이 ‘하다’입니다; to do.
어른을 위한 동화를 한 잡지에 두어 해 연재한 적 있는데,
그때 썼던 한 편에 등장했던 이름이었고,
아이가 왔고,
뱃속 아이를 그리 불렀고,
태어나자 그대로 그 아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다 자라는 동안
엄마의 사람됨이 태교이겠거니,
부모의 사람됨이 교육이겠거니 했고,
하여 그저 열심히 살았지요.
헌데 똑바로 걷는 내 걸음을 보느라 보지 못한 아이는
지금 잘 걷고 있는 걸까요...
부모 속이야 뉘 집이라고 다를까요...